“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뒤 “신부님, 이제 고아가 되셨네요.”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을 종종 만납니다.
그 얘기를 들으면 정작 나는 고아가 되었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데
다른 분들이 그렇게 생각하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고,
그것은 육신의 부모와의 관계에서만 하는 얘기라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어머니가 아시면 서운하시고 어떤 분들은 이상하게 생각하시겠지만
제가 고아라는 것이 크게 마음에 와 닿지 않습니다.
왜냐면 어머니는 돌아가셨지만 하느님 아버지는 저와 늘 가까이 계시고,
어머니께서 이 세상에서는 돌아가셨지만
영적으로, 그러니까 하느님 안에서 늘 저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사실 저는 오래 전부터 <육신의 형제>이니 <친정>이라는 표현을 써왔는데
이는 제가 출가한 사람이고 혈육의 관계를 사는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과의 영적인 관계를 사는 사람이라는 뜻이지요.
이런 뜻에서 저는 오늘 복음을 이해합니다.
주님께서는 어머니 마리아와 형제들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고,
또 그 관계를 부정하는 것도 아닙니다.
육신의 관계, 혈육의 관계도 당신에게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당신과 하느님과의 관계이고
하느님 안에서 맺는 당신과 사람들의 새로운 관계입니다.
주님께서는 이것을 진작부터 알고 계셨습니다.
루카복음을 보면 예루살렘 순례 때 12살 어린 예수님은
부모를 따라 나자렛으로 돌아오지 않고 성전에 남아있었고
그래서 어머니 마리아는 왜 부모의 애를 태웠냐고 예수님을 나무라셨지요.
이에 예수님은 오히려 어머니 마리아를 나무라십니다.
당신이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할 줄을 모르셨냐는 겁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아니 인간적 예의로만 생각하면
이 얼마나 당돌하고도 무례한 태도입니까?
그러니까 어머니 마리아는 예수께서 자신의 정체성을 혈육에 두지 않고
아버지 하느님과의 관계에 두고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복음은 이에 대해 이렇게 얘기하지요.
“그의 어머니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다.”
그래서 제자들을 가리키며 이들이 내 어머니이고 형제라고 할 때
이런 식으로 말씀하시고 대하시는 것이 처음이 아니기 때문에
마리아는 주님께서 당신을 무시하시는 것이 아니라
제자들을 당신처럼 어머니로 여기겠다는 뜻으로 이해하셨을 겁니다.
대동사상大同思想.
우리는 여기서 우리의 대동사상을 봅니다.
혈연이나 신분 등이 무너지고 하느님 안에서 새로운 관계가 형성되는 것,
하느님 안에서 우리 모두는 형제자매이고, 어머니들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제가 어머니를 잃었지만 오히려 수없이 많은 어머니를 갖고 있으며,
지금까지 그래 왔지만 앞으로는 더욱
모든 어머니를 저의 어머니로 모시며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