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그리고 병에서 벗어나 건강해져라.”
하혈하는 이방 여인의 치유 얘깁니다.
이 여인은 참으로 불쌍한 여인이었습니다.
하혈하는 병을 오랫동안 앓은 것도 불쌍하고,
그 병을 고치느라 가진 것을 죄다 잃은 것도 불쌍하지만
병을 앓으면서도 주위 사람들로부터 아무 위로를 받을 수 없었던 것이
무엇보다도 그녀의 불쌍함이었습니다.
당시 여자가 하혈하는 것은 부정함의 표시였으니
그 병을 내놓고 얘기할 수도
하소연 할 수도
고쳐달라고 떼를 쓸 수도
이해해주지 않는다고 투정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위로받을 수 있는 병이 아니라 창피한 병이었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죽어가는 소녀의 아버지는 공개적으로 살려달라고 하는데
이 여인은 예수님께도 고쳐달라고 할 수조차 없었습니다.
여인은 그런 연유로 살그머니 예수님께 다가와 옷에 손만 댑니다.
그리고 예수님에게서 힘이 나와 그 여인에게 들어갑니다.
그래서 이 여인의 그 지긋지긋하고 수치스런 병은 치유됩니다.
너무도 감동적입니다.
우선 여인의 그 겸손함과 믿음이 감동적입니다.
옷깃만 닿아도 치유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은
낮춰질 대로 낮춰진 여인의 겸손에서만 가능합니다.
믿음은 겸손의 열매이고
겸손할수록 믿음이 커지고
겸손한 자에게만 주어지는 은총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주님의 그 따스함이 감동적입니다.
당시는 하혈하는 여인과 접촉을 하게 되면 부정을 탄다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접촉을 알아채신 걸 알고 예수님께서 화를 내실까봐
여인은 두려워 떨었던 거지요.
그러나 주님께서는 전혀 그렇게 생각지 않으시고,
오히려 믿음을 칭찬하시고,
크나큰 격려를 하시며,
병을 치유해주십니다.
육신이 건강해질 뿐 아니라
마음도 두려움에서 벗어나 평안히 가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이때 평안히 가라는 말씀은 더 정확히 번역하면
“평화로 가라!”는 뜻입니다.
자신이 평화로울 뿐 아니라 사람들에게 평화가 되라는 격려입니다.
저는 고백성사를 줄 때 야단칠 때도 있지만
나이를 먹어가면서는 고백의 내용이 좀 시덥지 않아도
좀체 야단치지 않고 칭찬을 하고 격려를 합니다.
고백소에 들어오는 그 용기가 칭찬받아 마땅하고
잘 고백할 줄 몰라도 마음만으로도 훌륭하지요.
실상 꼼꼼히 죄를 다 고백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뉘우치는 마음과 새롭게 살아가려는 마음이지 않습니까?
그러나 무엇보다도 주님과 여인 사이의 그 인격적인 관계가
감동적이고 아름답습니다.
이제는 치유자와 병자의 관계도 아니고,
한 남자와 이방인 여자의 어색한 관계도 아니고
부성적 사랑이 물씬한 아버지와 딸의 관계입니다.
주님께서 “딸아”라고 부르시는 거기에
사랑이 물씬 느껴지지 않습니까?
저는 “아들아”하는 소리를
자매님들은 “딸아”하는 주님의 부르심을 오늘 듣도록 하십시다.
그리고 병에서 벗어나 건강해져라.”
하혈하는 이방 여인의 치유 얘깁니다.
이 여인은 참으로 불쌍한 여인이었습니다.
하혈하는 병을 오랫동안 앓은 것도 불쌍하고,
그 병을 고치느라 가진 것을 죄다 잃은 것도 불쌍하지만
병을 앓으면서도 주위 사람들로부터 아무 위로를 받을 수 없었던 것이
무엇보다도 그녀의 불쌍함이었습니다.
당시 여자가 하혈하는 것은 부정함의 표시였으니
그 병을 내놓고 얘기할 수도
하소연 할 수도
고쳐달라고 떼를 쓸 수도
이해해주지 않는다고 투정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위로받을 수 있는 병이 아니라 창피한 병이었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죽어가는 소녀의 아버지는 공개적으로 살려달라고 하는데
이 여인은 예수님께도 고쳐달라고 할 수조차 없었습니다.
여인은 그런 연유로 살그머니 예수님께 다가와 옷에 손만 댑니다.
그리고 예수님에게서 힘이 나와 그 여인에게 들어갑니다.
그래서 이 여인의 그 지긋지긋하고 수치스런 병은 치유됩니다.
너무도 감동적입니다.
우선 여인의 그 겸손함과 믿음이 감동적입니다.
옷깃만 닿아도 치유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은
낮춰질 대로 낮춰진 여인의 겸손에서만 가능합니다.
믿음은 겸손의 열매이고
겸손할수록 믿음이 커지고
겸손한 자에게만 주어지는 은총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주님의 그 따스함이 감동적입니다.
당시는 하혈하는 여인과 접촉을 하게 되면 부정을 탄다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접촉을 알아채신 걸 알고 예수님께서 화를 내실까봐
여인은 두려워 떨었던 거지요.
그러나 주님께서는 전혀 그렇게 생각지 않으시고,
오히려 믿음을 칭찬하시고,
크나큰 격려를 하시며,
병을 치유해주십니다.
육신이 건강해질 뿐 아니라
마음도 두려움에서 벗어나 평안히 가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이때 평안히 가라는 말씀은 더 정확히 번역하면
“평화로 가라!”는 뜻입니다.
자신이 평화로울 뿐 아니라 사람들에게 평화가 되라는 격려입니다.
저는 고백성사를 줄 때 야단칠 때도 있지만
나이를 먹어가면서는 고백의 내용이 좀 시덥지 않아도
좀체 야단치지 않고 칭찬을 하고 격려를 합니다.
고백소에 들어오는 그 용기가 칭찬받아 마땅하고
잘 고백할 줄 몰라도 마음만으로도 훌륭하지요.
실상 꼼꼼히 죄를 다 고백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뉘우치는 마음과 새롭게 살아가려는 마음이지 않습니까?
그러나 무엇보다도 주님과 여인 사이의 그 인격적인 관계가
감동적이고 아름답습니다.
이제는 치유자와 병자의 관계도 아니고,
한 남자와 이방인 여자의 어색한 관계도 아니고
부성적 사랑이 물씬한 아버지와 딸의 관계입니다.
주님께서 “딸아”라고 부르시는 거기에
사랑이 물씬 느껴지지 않습니까?
저는 “아들아”하는 소리를
자매님들은 “딸아”하는 주님의 부르심을 오늘 듣도록 하십시다.
평안히 가라하시는 말씀이 제게도 이루어지기를...
말씀 속에 많은 위로를 얻습니다..감사드려요^^):
옷깃만 닿아도 나으리라는 믿음... 주님 옷자락에 다가선 여인의
마음이 되어 올해도 제 앞의 많은 어려움들을 이겨나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