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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에서 하느님을 본 사람으로
소개되는 사람은
모세입니다.
모세는 하느님과 친구처럼
얼굴과 얼굴을 마주대고 바라보았다고
성경은 전합니다.
모세가 하느님과 대화를 하는 동안
하느님의 영향을 받아 얼굴이 빛나게 되어
모세가 사람들에게 다시 다가갔을 때에도
그 빛은 꺼지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그 빛이 너무 눈부셔서
모세 얼굴에 너울을 씌우게 됩니다.
모세 얼굴을 보기 힘들어 하는 것은
여기에서 한편으로는
하느님을 직접 바라보는 것을
힘들어 하는 것과 연결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도 오래 가지 못하고
모세는 더 이상 하느님을 볼 수 없게 됩니다.
사람들이 황금 송아지를 만들고 나서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너는 더 이상 나를 볼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이 하느님을 뵙는 것을
두려워한 것을 넘어서서
이제는 볼 수 있는 가능성 조차도 없어졌습니다.
직접 볼 수 없다는 것은
그만큼 거리가 생긴 것이고
그만큼 인간은 하느님을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필립보는
하느님을 보고 싶어합니다.
그것은 단순한 호기심에서 나온 것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 또한 삶에 의문이 생길 때
더 나아가 신앙에 의문이 생길 때
정말 하느님께서 계시는지 묻게 됩니다.
그 순간 우리도 하느님을 보고 싶은 마음을
갖기도 합니다.
의문이 생긴다는 것은
인간이 한계에 도달했음을 뜻하기도 합니다.
한계의 상황에서
아무리 발버둥 쳐도 안 된다고 느껴질 때
하느님을 원망하기도 합니다.
홀로 버려진 존재로 살아가야만 하는 것인지
안타깝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아버지께 가는 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통해서
하느님께서 세상으로 다가오셨음을 뜻합니다.
하느님께서 세상에게 다가오시는 길이기에
반대로 우리가 하느님께 나아가는 길이기도 합니다.
즉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통해
멀어졌던 관계를 가깝게 만들고 싶어 하십니다.
즉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셨다는 것은
우리가 홀로 버려진 존재가 아님을
하느님께서 몸소 말씀하신 사건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다가오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방식인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도 하느님께 나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때로 우리는 나만의 방식
즉 황금 송아지를 통해서
하느님을 만나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그 방식은
오히려 하느님을 볼 수 없고
하느님에게서 멀어지게 만듭니다.
즉 일방적인 관계가 아니라
하느님과 대화를 통해 만들어가는
상호 관계로
하느님과의 일치로 나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다가오시는 하느님과
마주 나아가는 우리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평화와 기쁨을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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