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마또레 평화기도 다락방 말씀기도
by 고인현 도미니코 신부 ofm
아니마또레(이태리어): '보듬어 주고 영감을 불어넣는 자'를 의미합니다.
에페소 공의회(431년)에서 하느님의 어머니로 선포한 성모님을 ‘평화의 모후’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모후’(찬미받으소서 241항)로 모시며 중동과 한반도의 평화 그리고 생태적 회심을 지향하는 온라인 기도방입니다。
2024년 5월 16일 목요일
교부들의 말씀 묵상
저는 이들만이 아니라 이들의 말을 듣고 저를 믿는 이들을 위해서도 빕니다.(요한 17,20)
그리스도께서 사랑받으시듯 우리도 사랑받고 하나 되다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그리스도인은 하느님 안에서 하나이며, 당신의 사랑받는 자녀로서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2베드 1,4)하고 있다는 사실을 되새겨 주십니다. 우리는 앞에서, 본성이 아니라 은총에 따라 우리는 아버지와 아들 안에서 하나라고 말한 바 있으며, 진실을 좀 더 상세히 알 필요가 있습니다. 마니교도들이 끊임없이 내세우는 것과 달리 인간 영혼의 본질과 하느님의 본질은 같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는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셨듯이 그
들도 사랑하셨다”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본성의 영역에서가 아니라 은총의 영역에서 그분의 본성에 참여하는 특권을 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아버지께 사랑받는 이유는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시기에 그 몸의 지체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요한 1,12-13 참조).
-히에로니무스-
생태 영성 영적 독서
마이스터 엑카르트는 이렇게 말했다(대지를 품어 안은 엑카르트 영성) / 매튜 폭스 해제 · 주석
【첫째 오솔길】
창조계
설교 6 사람은 숭고하다
사람은 새로운 성전이다.
처음에 엑카르트는 바울로의 이 권고를 본문으로 삼아 이 설교를 작성했다. 하지만 그는 또 다른 구절도 덧불인다.
“때가 차자 하느님이 당신 아드님을 보내셨으며, 한 여인에게서 태어나 율법 아래 놓이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율법 아래 있는 이들이 속량되도록, 곧 우리가 아들 자격을 받도록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과연 여러분은 아들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느님은 당신 아드님의 영을 우리 마음 안에 보내셨으며 그 영은 ”아빠, 아버지!"라고 외치고 계십니다. 이처럼 그대는 이미 종이 아니라 아들이요, 아들이라면 또한 하느님이 세우신 상속자입니다“(갈라 4.4-7).
엑카르트는 우리가 하느님을 닮았을 뿐 아니라, 그리스도와도 닮았음 -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은 여러분 안에도 있다- 을 규명한다. 또한 그는 충만한 시간에 입각한 새로운 시간 감각도 규명한다. 엑카르트가 이러한 주제를 앞에 인용한 성서 구절들에서 따왔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엑카르트는 “충만한 시간”을 일컬어 영원이라고 부른다. 우리가 지금 당장 경험할 수 있는 이 영원의 가장 큰 특징은 새로움이다.(170)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다락방 5월 2주간
<금주간 성서읽기>사도 24-28장
<생태 아낌 주간> 물.전기.자동차.구매와 소비
목요일 성모님의 날
<파티마의 성모 마리아와 목동 / 세 바르따스>
제 4장 오직 고통뿐
“읽는 법을 배워라”
이때부터 마리아 로사는 올린삐아와 의논하여 아이들을 마을 학교에 보내기로 했다.
그런데 이 뒤진 신입생이 다른 생도들이나 선생들의 무례하고 부끄러울 지경의 호기심과 신기한 구경거리로 관찰되었으리라는 것쯤은 상상하고도 남는다. 그러나 총명하고 공부하기 좋아한 세 아이는 뛰어난 진보를 했다. 그렇지만 프란치스코와 히야친타에게 있어서 그 재능을 충분히 발휘할 만한 시일이 없었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휴게 시간이 되면 두 소녀는 재미있게 노는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성당에 가서 성체 조배를 했다. 히야친타는 늘 말했다.
“난 사람들이 내가 하는 일을 다 알고 있다고 생각돼요. 성당에 가면 거기에 사람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난 혼자서 성체 안에 계시는 예수님과 이야기하고 싶은데 사람들은 조금도 자유롭게 놓아 두질 않아요”
그 사람들이란 거의 모두가 이웃 사람들이었고 각자의 근심 걱정을 부탁하고 싶어서 아이들을 찾아오는 것이었다. 어떤 사람들이 가정의 슬픔이 되고 집안의 불행이 되어 있는 죄인의 회개를 부탁하면 세 아이들은, “우리는 그분을 위해 기도하겠어요. 그리고 회개하여 지옥에 떨어지지 않게끔 희생을 바치겠어요" 하고 그들에게 말했다.
세 어린이는 특별히 교리 공부를 열심히 했다. 프란치스꼬와 히야친타는 부푼 가슴을 안고 첫영성체를 하기 위해 전력을 기울였다. 첫영성체! 이것은 두 어린이의 유일하고도 가장 큰 희망이었다.
프란치스꼬는 자기는 공부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확실한 데서 들었기에 가끔 공부 시간에도 성당에서 기도했다.
마을에 들어서면 셋은 먼저 성당에 가서 성체 안에 계시는 예수님께 인사했다. 프란치스코는 때때로 루치아에게 말하는 것이었다.
“넌 공부하러 가야 해. 난 여기 남을 거야. 머지 않아 난 천국에 갈 테니까 공부할 필요가 없어. 수업이 끝나면 알려 줘."
해가 기우는 저녁 때 루치아는 성당 구석에 성체를 모신 제대 가까이 있는 프란치스코를 만날 수가 있었다.
그 다음 겨울 프란치스코는 병에 걸려서 집에 남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는데 소년의 큰 슬픔은 예수님을 찾아 뵙지 못하게 된 그것이었다.
“제일 섭섭한 것은 성체 안에 계시는 예수님과 잠깐이라도 함께 있을 수 없는 것이야. 성당에 가거든 예수님께 내 몫까지 많은 인사 드려 줘." 하고 루치아에게 부탁했다.(1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