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너희가 알게 해 주겠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에게 용서의 권한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하느님 밖에는 용서의 권한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예수님께서 용서의 권한이 당신에게 있다고 하시니
많은 사람들이 깜짝 놀라 수군거립니다.
그렇다면 정말 용서의 권한은 하느님께만 있는 걸까요?
인간에게는 용서의 의무만 있고 용서의 권한은 없는 겁니까?
제가 누굴 용서해주겠다고 하면 그는 대뜸 용서를 청해야 할 주제에
누굴 용서해주겠다는 거냐고 면박을 줄 겁니다.
그리고 누가 절 용서한다고 하면 저도 그럴 겁니다.
그러므로 자격자로서 용서할 권한은 없고
의무로서 용서해야 할 것은 있다고 해야 할 것이고,
하느님께만 용서의 권한이 있고 우리 인간에게는 없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권한은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하느님의 용서를 대신하는 용서의 권한 말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위임하시는 용서의 권한이지요.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권한을 위임하시며 분명히 말씀하셨지요.
“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겸손하게 용서를 해야 하고
큰 영광으로 생각하며 용서를 해야 합니다.
나의 용서는 이렇게 하느님의 용서를 대신하는 용서이기 때문이고,
내가 누군가를 용서할 때 하느님이 내 안에서 발생하고,
나는 하느님이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또한 하느님처럼, 예수 그리스도처럼
우리 자신을 위해 다른 사람을 용서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오늘의 첫째 독서 이사야서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나, 바로 나는 나 자신을 위하여 너의 악행들을 씻어 주는 이,
내가 너의 죄를 기억하지 않으리라.”
우리가 누군가를 용서하면 그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나 자신을 위하여 용서하는 것입니다.
왜냐면 그가 용서를 바라는 사람이라면
나의 용서가 그를 죄에서 해방시켜주는 것이기에 그를 위한 거지만
그는 내 용서 받기를 원하지도 않고
단지 나만 용서치 못하여 괴로워할 뿐인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내게 못할 짓을 하고도 용서청할 마음이 없고,
나는 그로 인해 무척 괴로워하는데도 그는 천하태평입니다.
그러니 누구 좋으라고 용서합니까?
이런 사람을 위해 용서하란 말입니까?
이런 사람을 위해 용서하라면 아무리 용서하려 해도 안 됩니다.
용서치 못할 때 복수하려는 마음이 내 안에 들어올 것이고,
내 안에 복수하려는 마음으로 가득할 때 악으로 가득하며,
악으로 가득할 때 그 악으로 오히려 내가 또 해를 입게 될 뿐입니다.
해악을 그에게 끼치는 것이 아니라 해악이 내게 미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용서는 철저히 이기적인 것입니다.
정말로 약은 사람은 자기를 위해 얼른 악한 마음을 치워버립니다.
이것이 용서이고,
이것은 더러운 것을 빨리 치워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저의 청소구역은 앞마당인데 어느 날 아침에 나가 보니
누가 거기다 똥을 한 무더기 싸놨습니다.
“어떤 놈이 감히 거룩한 수도원 앞마당에 감히 똥을 싸놨어!”하며
똥 때문에 그를 미워하고 분노하는 마음으로 투덜거리고 있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었습니다.
그 놈의 똥 때문에
내 안에 똥보다 더 더러운 미움과 분노가 들어와 있구나!
그렇게 미워하고 분노만 하며 똥을 치우지 않으면 무슨 소용인가?
빨리 치워버려야지!
이렇게 생각하며 치우고 나니 똥을 치운 상쾌함이,
미움과 분노를 이겨낸 대견함이 저를 기쁘게 하고 행복케 했습니다.
용서란 이런 것이고,
이런 내 사랑에서 사랑이 자라나
이제 온전히 너를 위해서 용서할 수도 있게 되는 겁니다.
나를 위해 더러운 것은 빨리 치웁시다!
너희가 알게 해 주겠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에게 용서의 권한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하느님 밖에는 용서의 권한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예수님께서 용서의 권한이 당신에게 있다고 하시니
많은 사람들이 깜짝 놀라 수군거립니다.
그렇다면 정말 용서의 권한은 하느님께만 있는 걸까요?
인간에게는 용서의 의무만 있고 용서의 권한은 없는 겁니까?
제가 누굴 용서해주겠다고 하면 그는 대뜸 용서를 청해야 할 주제에
누굴 용서해주겠다는 거냐고 면박을 줄 겁니다.
그리고 누가 절 용서한다고 하면 저도 그럴 겁니다.
그러므로 자격자로서 용서할 권한은 없고
의무로서 용서해야 할 것은 있다고 해야 할 것이고,
하느님께만 용서의 권한이 있고 우리 인간에게는 없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권한은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하느님의 용서를 대신하는 용서의 권한 말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위임하시는 용서의 권한이지요.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권한을 위임하시며 분명히 말씀하셨지요.
“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겸손하게 용서를 해야 하고
큰 영광으로 생각하며 용서를 해야 합니다.
나의 용서는 이렇게 하느님의 용서를 대신하는 용서이기 때문이고,
내가 누군가를 용서할 때 하느님이 내 안에서 발생하고,
나는 하느님이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또한 하느님처럼, 예수 그리스도처럼
우리 자신을 위해 다른 사람을 용서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오늘의 첫째 독서 이사야서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나, 바로 나는 나 자신을 위하여 너의 악행들을 씻어 주는 이,
내가 너의 죄를 기억하지 않으리라.”
우리가 누군가를 용서하면 그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나 자신을 위하여 용서하는 것입니다.
왜냐면 그가 용서를 바라는 사람이라면
나의 용서가 그를 죄에서 해방시켜주는 것이기에 그를 위한 거지만
그는 내 용서 받기를 원하지도 않고
단지 나만 용서치 못하여 괴로워할 뿐인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내게 못할 짓을 하고도 용서청할 마음이 없고,
나는 그로 인해 무척 괴로워하는데도 그는 천하태평입니다.
그러니 누구 좋으라고 용서합니까?
이런 사람을 위해 용서하란 말입니까?
이런 사람을 위해 용서하라면 아무리 용서하려 해도 안 됩니다.
용서치 못할 때 복수하려는 마음이 내 안에 들어올 것이고,
내 안에 복수하려는 마음으로 가득할 때 악으로 가득하며,
악으로 가득할 때 그 악으로 오히려 내가 또 해를 입게 될 뿐입니다.
해악을 그에게 끼치는 것이 아니라 해악이 내게 미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용서는 철저히 이기적인 것입니다.
정말로 약은 사람은 자기를 위해 얼른 악한 마음을 치워버립니다.
이것이 용서이고,
이것은 더러운 것을 빨리 치워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저의 청소구역은 앞마당인데 어느 날 아침에 나가 보니
누가 거기다 똥을 한 무더기 싸놨습니다.
“어떤 놈이 감히 거룩한 수도원 앞마당에 감히 똥을 싸놨어!”하며
똥 때문에 그를 미워하고 분노하는 마음으로 투덜거리고 있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었습니다.
그 놈의 똥 때문에
내 안에 똥보다 더 더러운 미움과 분노가 들어와 있구나!
그렇게 미워하고 분노만 하며 똥을 치우지 않으면 무슨 소용인가?
빨리 치워버려야지!
이렇게 생각하며 치우고 나니 똥을 치운 상쾌함이,
미움과 분노를 이겨낸 대견함이 저를 기쁘게 하고 행복케 했습니다.
용서란 이런 것이고,
이런 내 사랑에서 사랑이 자라나
이제 온전히 너를 위해서 용서할 수도 있게 되는 겁니다.
나를 위해 더러운 것은 빨리 치웁시다!
기도하겠습니다^^
배우고 익힌 말씀을 제가 선 이곳에서 실천하며 살겠습니다.
어느 곳에서나 늘 하느님 사랑으로 충만한 나날되시기를 기도하겠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많이 보여 주셨고
하느님과의 아름다운 추억들을 많이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 추억들을 상기하며
저도 하느님의 사랑을 살아가는 여정이 되도록 깨어 있겠습니다.
이제 대전에서 새로운 소임을 시작하실 때,
주님께서 새로운 힘과 기쁨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신부님! 늘 건강하시고 평화로운 나날되셔요..
신부님, 어디에 계시든 영육간에 건강을 기원합니다.
이것으로 정동의 말씀 나누기는 끝나고,
내일부터는 대전 수련소의 말씀 나누기가 되겠습니다.
새로운 곳에 적응하고 인수하느라,
수련소 강의 준비하느라 어쩌면 말씀 나누기 못 올리는 날이 있을까봐 걱정됩니다.
가능한 한 안 빠지겠지만 혹 빠지는 날이 있더라도 이해해주시기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