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Skip Navigation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한국관구, 프란치스코회, 작은형제회, 성 프란치스코, 아씨시, 프란치스칸, XpressEngine1.7.11, xe stylish

말씀나누기
김명겸요한 2024.07.03 14:05

성 토마스 사도 축일

조회 수 32 추천 수 0 댓글 0
매일미사 말씀 보기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No Attached Image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것을
 토마스는 다른 제자들에게 듣습니다.
 믿을 수 없었던 그는
 그 사실을 의심합니다.
 여드레 뒤에 예수님께서는 다시 제자들에게 오시고
 토마스에게 당신의 몸을 보여주십니다.
 그 모습을 보고 토마스는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하고 말합니다.
 무엇이 그가 예수님을
 주님과 하느님으로 고백할 수 있게 했을지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의심은 어떤 것을 믿지 못해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사실로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에서
 믿음과 반대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예수님께서도
 '의심을 버리고 믿으라'고 말씀하시면서
 의심은 좋지 않은 것처럼 표현하십니다.

 토마의 경우를 보면
 그가 믿지 못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는 믿지 못하기 때문에
 받아들이는 것도 거부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믿기 어렵기 때문에 증거가 필요했습니다.
 즉 적어도 그는 예수님 부활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것을 받아들이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그것을 무조건 받아들이기에는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즉 그의 의심은 관심을 포함하는 의심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유독 '보다'라는 동사가
 많이 나옵니다.
 여기에서 사용된 '보다'라는 동사는
 전부 같은 동사이며
 요한이 무덤에 가서 아마포와 수건이 놓인 것을
 보고 믿었다라고 말할 때
 그 동사입니다.
 이 동사는 요한 복음에서
 항상 믿음과 연결해서 나타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요한 복음 전반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믿음을 위해 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입니다.
 그렇기에 토마스가 보고 싶어하는 것은
 믿고 싶어하는 마음과 연결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의심을 버리고 믿으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맹목적인 신앙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의심은 관심의 표현이며
 믿음으로 나아가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즉 신앙에 있어서
 의심을 품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관심이 있는지가 그 기준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 관심은 우리도
 예수님을 나의 주님과 나의 하느님으로
 고백할 수 있는 신앙으로
 이끌어 줄 것입니다.

서비스 선택
<-클릭 로그인해주세요.
댓글
?
Powered by SocialXE

말씀 나눔

매일미사 독서와 복음, 그리고 성 프란치스코의 글 묵상나눔

  1. No Image 03Jul

    성 토마스 사도 축일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것을  토마스는 다른 제자들에게 듣습니다.  믿을 수 없었던 그는  그 사실을 의심합니다.  여드레 뒤에 예수님께서는 다시 제자들에게 오시고  토마스에게 당신의 몸을 보여주십니다.  그 모습을 보고 토마스는  '저의 주님, 저의...
    Date2024.07.03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명겸요한 Reply0 Views32
    Read More
  2. No Image 03Jul

    성 토마스 사도 축일-토마스를 따라서

    “저의 주님, 저희 하느님!”   토마스를 따라서   하느님과 하느님 나라에 가기 위해서는 주님을 따라야 하지만 완전하고 확고한 믿음에 이르기 위해서는 토마스를 따르면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주님은 의심하거나 불신하신 적이 없으니 우리가 믿...
    Date2024.07.03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11 Views562
    Read More
  3. No Image 02Jul

    연중 제13주간 화요일

    바람과 호수는 자주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대상으로 나타납니다. 인간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기 때문에 바람이 강하게 불고 파도가 치면 인간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습니다. 통제할 수 없는 자연 앞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그것을 ...
    Date2024.07.02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명겸요한 Reply0 Views75
    Read More
  4. No Image 02Jul

    연중 13주 화요일-내 마음은 호수

    “그때 호수에 큰 풍랑이 일어 배가 파도에 뒤덮이게 되었다.” “예수님께서는 일어나셔서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셨다. 그러자 아주 고요해졌다.”   오늘은 내 마음은 호수라는 주제로 나눔을 할까 합니다. 내 마음은 호수여 라는 노래가 있잖습니까? 내 마음도 ...
    Date2024.07.02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10 Views561
    Read More
  5. No Image 02Jul

    2024년 7월 2일 화요일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다락방 말씀 기도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다락방 말씀 기도 by 고인현 도미니코 신부 ofm 아니마또레(이태리어): '보듬어 주고 영감을 불어넣는 자'를 의미합니다. 에페소 공의회(431년)에서 하느님의 어머니로 선포한 성모님을 ‘평화의 모후’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모후’(찬미받...
    Date2024.07.02 Category말씀나누기 By고도미니코 Reply0 Views83
    Read More
  6. No Image 01Jul

    연중 제13주간 월요일

    두 사람이 예수님을 따르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그 둘에게 예수님께서 하시는 대답이 다릅니다. 그 둘은 무슨 차이가 있고 예수님의 대답이 왜 서로 다른지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먼저 율법 학자의 경우입니다. 그는 기꺼이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말...
    Date2024.07.01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명겸요한 Reply0 Views91
    Read More
  7. No Image 01Jul

    연중 13주 월요일-풋사랑에서 시작하여

    “스승님,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스승님을 따르겠습니다.”   오늘 율법 학자는 당시 율법 학자들 가운데 보기 드문 존재입니다. 제자로 받아들이셨는지 알 수 없지만 훌륭한 제자의 본보기입니다.   우선 그는 다른 율법 학자들과 달리 주님을 스승으로 삼고자 ...
    Date2024.07.01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11 Views463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 Prev 1 2 3 4 5 6 7 8 9 10 ... 1324 Next ›
/ 1324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