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다른 고을에도 전해야 한다.”
어제와 오늘의 복음은 마치 종합선물세트처럼
예수님께서 하시는 복음 선포를 종합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어디를 가시든 늘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병자들을 고쳐주시고,
-악령들을 퇴치하시고,
-외딴 곳에서 기도하십니다.
한 곳에서 이렇게 하신 다음 주님께서는 다른 곳으로 가십니다.
사람들이 가만 놔두지 않고 붙잡지만 주님께선 굳이 떠나십니다.
그래서 주님의 삶은 공생활 내내 순례자와 나그네로 사시는데,
루카복음이 다른 공관복음보다 더 이 점을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당신을 붙잡을 때 주님도 그냥 눌러앉고플 것입니다.
동가식서가숙東家食西家宿의 떠돌이 생활이 너무 고달프기 때문입니다.
고달프기만 한 것이 아니고 매우 불안정한 삶이기도 하지요.
순례자와 나그네의 프란치스칸 영성을 몸으로 체험하기 위해서
8월 한 달 내내 저는 수련 형제들과 떠돌이 생활을 하였습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나이를 먹어 갈수록 힘이 들어
순례를 마친지 며칠이 지났는데도 아직 피곤하고,
집에 돌아와 제 침대에 누웠을 때는 그렇게 편안하고 좋을 수 없었습니다.
이것을 통해서 저는 우리의 삶을 다시 한 번 반성해봅니다.
우리 인간은 누구나 불안不安을 싫어하고 불안정不安定을 싫어합니다.
그리고 누구도 불안정한 삶을 결코 바람직한 삶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불안정한 삶을 선택해야 합니다.
안정安定은 쉽게 안주安住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앙의 이유가 아니라도 삶이 너무 안정되고,
그래서 삶이 너무 권태롭고 너무 지루하면,
그래서 어떤 새로운 충전이 필요하다 싶으면,
훌쩍 짐을 싸서 어디론가 떠날 필요가 있지요.
계속되는 안정은 안정이 아니라 썩어버리는 고이는 물과 같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계속해서 떠도시는 것은 이런 이유가 아니지요.
당연히 복음 선포를 위한 것이고 우리에 대한 사랑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불안정은 복음적 불안정이라고 해야 할 겁니다.
결코 원치는 않지만 하느님 나라 선포를 위해 스스로 선택한 불안정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복음적인 불안정을 선택한다면 복음 선포를 위해
다시 말해서 이웃 사랑 때문에 선택하기도 하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내가 이웃을 위해 선포하는 그 하느님 나라에
나도 들어가기 위해 선택하는 것입니다.
근본적으로 우리는 천국의 나그네라는 뜻이지요.
우리는 너나없이 다 천국을 향해 가는 나그네입니다.
그런데 우리 삶이 편안하고 안정되면 이 세상살이에 안주하고 싶어지겠지요.
그러므로 우리의 삶이 고달플 때,
우리의 삶이 불안정하고 심지어 불안할 때
그것이 우리를 하늘나라로 인도하는 것으로 껴안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이것을 묵상하는 하루가 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