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묵은 포도주를 마시던 사람은 새 포도주를 원하지 않는다.
사실 그런 사람은 ‘묵은 것이 좋다.’고 말한다.”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
그렇지만 늘 새로운 분이신 하느님.
가끔 저는 기막힌 광고에 감탄을 하고
그런 광고문구에서 영감을 받곤 합니다.
이것도 광고문구인 것 같은데
<오래된 것이 아니라 오래 우리와 함께 있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요즘 우리 사회는 보수와 진보가 나뉘어 심하게 갈라져 있습니다.
보수와 진보의 갈등이 어디든 있고,
나이 든 사람들과 젊은 사람들의 생각 차이도 늘 있게 마련이지만
그 정도와 양상이 심히 걱정스럽고 추함이 극에 달한 것 같습니다.
저도 이제는 나이든 사람이고 그래서 묵은 것이 좋다고 말하고,
옛것이 익숙하고 편하며 옛 전통이 무너지는 게 걱정도 되지만
요즘은 나이든 사람들, 보수층이 하는 것을 보면
옛날의 좋은 것을 지키려 한다고 느껴지기보다는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것, 기득권을 잃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는 것 같이 보여 보기 안쓰럽습니다.
그런데 무엇이 새로움을 받아들이지 않고, 새로움을 옷 입지 않으면
그것은 오래 우리와 함께 있고, 오래 우리와 함께 있을 것이 아니라
오래된 것, 낡은 것, 그래서 추하고 쓸 모 없는 것이 되고 말 겁니다.
그러므로 보수와 나이 든 사람은 옛것만을 고집하는
고루하고 낡은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늘 쇄신해야 합니다.
쇄신刷新, 그것은 새로움을 받아들이고 새로움을 옷 입는 것입니다.
요즘 진보와 젊은 사람들은 온고지신溫故知新할 줄 모릅니다.
옛것의 좋은 점을 볼 줄 모르고
어른들의 경륜에 대한 존경심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진보와 젊은 사람들이 온고지신을 하려면
옛것이 오래된 것이 아니라 오래 우리와 함께 있어온 것이어야 합니다.
무엇이 지금까지 이어져왔다면, 다시 말해 오래 우리와 함께 있어왔다면
그것은 그 오랜 기간만큼이나 좋은 것,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오래 갈만큼 좋지 않고 가치가 없었다면 벌서 사라져버렸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낡고 오래된 것이었다면 벌써 사라졌을 겁니다.
그 가르침이 지금까지 이어져온 것은 그만큼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낡고 오래된 것으로 젊은이에게 비친다면
그것은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지는 않고
옛것을 그대로 고집하여 낡고 오래된 것으로 만들어버렸기 때문입니다.
하느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은 태초부터 계신 분이시니 아주 오래된 분이시라고 할 수 있지요.
그런데 그분이 영원하신 것은 영원히 새로운 분이시기 때문이기도 하지요
그래서 하느님은 오늘 주님 말씀처럼
묵은 것이 좋다고 하는 사람도 좋아하고
새것이 좋다고 하는 사람도 좋아하는 분이십니다.
새 포도주를 담는 새 부대도 되고
묵은 포도주는 묵어서 좋다고 하는 우리가 되기를 갈망하는 오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