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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의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아신다.”

하느님은 우리가 청하기도 전에 우리의 필요를 아신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뜻은 정확히 무엇일까요?
다 아시니 청할 필요가 없다는 뜻일까요?
청원기도는 할 필요가 없다는 뜻입니까?
기도를 한다면 찬미와 흠숭의 기도만 하라는 뜻입니까?

그렇다면 지금 우리와 주님 사이에는 별 볼일이 없을 거 같습니다.
뛰어난 성인이나 그럴 수 있지
우리 같이 청할 것만 많고 찬미와 흠숭은 잘 못하는 사람은
무엇을 가지고 주님과 만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주님께서 말씀하신 뜻은 분명 그런 게 아닐 겁니다.
복음의 다른 곳을 보면 그게 더욱 확실해집니다.
돌아가시기 전 주님은 당신 사랑을
제자들에게 더욱 진하게 보여주고 싶으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의 발을 일일이 씻어주셨습니다.
그것이 너무 죄송한 베드로가 자기 발은 씻을 수 없다고 하자
주님께서는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않으면
너는 나와 함께 아무런 몫도 나누어 받지 못한다.”고 답하십니다.
여기서 “나와 함께 아무런 몫도 나누어 받지 못한다.”는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게 된다.”는 뜻도 됩니다.

주님은 이렇게 생각하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병자이기에 의사이신 당신이 필요하고
우리가 죄인이기에 당신의 용서가 필요하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부활찬송은 이렇게까지 노래합니다.
“참으로 필요했네, 아담이 지은 죄, 그리스도의 죽음이 씻은 죄.
오, 복된 탓이여 (O felix culpa)!
너로써 위대한 구세주를 얻게 되었도다.”
“Felix Culpa”, 죄를 “복된 탓”이라고 합니다.
이 죄로 우리가 주님을 만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죄가 많은 곳에 은총이 더욱 풍성하다는
바오로 사도의 신학과 맥이 닿는 말이지요.

그러므로 청하기도 전에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을 다 아신다는 말은
청원기도를 하지 말라는 말씀이 아니라
빈 말, 허사를 되풀이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빈 말, 그것은 마음에도 없는 말입니다.
그래서 아무런 의미가 없을 뿐 아니라
아무런 존재도 발생치 않고,
아무런 행위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나중에 한 번 보자”고 하는데 그 말이 참말인 줄 알면 바보이고,
그 말이 참말인 줄 알고 진짜 보러갔다가는 난처한 상황이 벌어집니다.
진정 만나는 것이 원이면 지금 보면 되지 왜 나중에 봅니까?

그러므로 기도는 주둥이가 아니라 존재가 하는 것이며,
화려한 언사가 아니라 진심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존재가 존재를 만나고,
행위와 행위가 만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지금 보고 싶지 않으면 나중에 보자고 하지 말고,
숫제 “주님, 저는 지금 주님과 별 볼 일 없습니다.”하는 것이 낫습니다.
그리고 지금 하느님을 찬미하고 흠숭할 수는 없고 청할 것만 있으면
빈 말 섞지 말고 그저 간절히 청하면 됩니다.
물론 청하기도 전에 주님은 그 걸 다 아시지만
주님이 나의 사정을 알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있는 그대로 겸손하게 드러내 보이는 뜻에서 청을 하는 겁니다.

그러니 오늘도 죄송하게 생각지 말고 수없이 간청의 기도를 올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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