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 학자가 예수님께 묻습니다.
'모든 계명 가운데에서
첫째가는 계명은 무엇입니까?'
유다인들은 하느님께 십계명을 받았습니다.
그밖에도 유다인들은
하느님의 말씀으로 생각하면서
지켜야 할 계명들과 규정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것들은 오래, 그리고 잘 살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기에
그것들을 지키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규정을 지키다보면
지금의 상황에 딱 들어 맞지 않는 것들을
보게 됩니다.
누구는 그래서 새로운 규정을 만들기도 하지만
규정이 많이 생기는 것은
때로는 우리의 자유를 방해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많은 경우
그 규정을 새로운 상황에 어떻게 적용할지
고민하게 됩니다.
그러다보니
그 규정의 원래 뜻이 무엇인지 묻게 되고
그 질문을 이 율법 학자는
'첫째 가는 계명이 무엇인지'로 묻고 있습니다.
모든 규정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그 기준은
우선 '유일하신 하느님'입니다.
한 분뿐이신 하느님의 말씀이
계명이나 규정으로 표현된 것입니다.
즉 계명을 지킨다는 것은
그 하느님과 관계를 맺는 방법입니다.
유다인들에게 계명은
단지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서 잘 살기 위해서
서로 합의한 규칙들이 아닙니다.
하느님과 관계를 맺는 하느님의 자녀로서
마땅히 지켜야 하는 것들이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다보니
사람들의 입맛에 맞추기 보다는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찾는 쪽으로
방향이 맞추어지게 됩니다.
물론 하느님의 뜻을 찾는다는 것이
다른 사람들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도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에 이어
바로 이웃과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지금 당장은 하느님의 뜻을 따라가다보니
사람들의 입맛을 무시하고
그것을 맞춰주는 것을 거부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이 기준에서 빠진 사랑은
모든 사람을 위한 사랑이 아니라
자칫 너만을, 몇 명의 사람들만을 위한
사랑으로 바뀔 가능성이 많습니다.
즉 하느님을 그 기준으로 삼는 것이
너무 원칙만 따지는 것 같아서
딱딱하게 보일 수 있지만
그것은 더 많은 사람을 사랑하기 위한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어디에 기준을 두고 살아가는 것이 좋을지
매번 고민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신앙인으로서
그 기준의 하나로
하느님을 생각하는 것도
우리의 삶에 많은 도움을 주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