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재산을 낭비한다는 말을 들은 부자는
집사를 쫓아내려고 합니다.
이에 집사는 꾀를 내어
주인의 재산으로
사람들의 환심을 사려고 합니다.
주인에게 빚진 사람들을 불러
그들의 빚을 일부분 없애줍니다.
그는 주인에게 빚진 사람들의 환심도 사지만
주인의 칭찬도 듣게 됩니다.
결국 집사 자리를 잃지 않고
계속할 수 있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행동을 영리함이라고 표현하십니다.
이 말씀은 알아듣기 쉽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그를 칭찬하시는 것인지
아니면 그를 이 세상의 자녀라는 표현으로
빛의 자녀들과 비교해서
좋지 않게 보시는 것인지
구분이 잘 되지 않습니다.
우선 그의 행동이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임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이 집사같은 행동이 필요하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의 행동이 옳은 것은 아닙니다.
복음의 마지막 부분에서
그는 불의한 사람이라고 묘사됩니다.
그의 행동이 잘못된 것이었음을 이야기합니다.
여기에서 혼돈이 오는 이유는
잘못된 행동임에도
그것을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로 생각하며
선택할 것인지
아니면 잘못된 행동이기 때문에
하지 않을 것인지
결정하는 것이 매번 쉽지 않기 때문에
더 그러한 것 같습니다.
올바른 것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올바름만 추구하면서
이 세상을 살아가기는 쉽지 않습니다.
사실 이 고민은
세상이 이야기하는 지혜를 선택하는 순간
더 이상 하지 않게 됩니다.
그 삶이 마냥 편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적어도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고민하는 어려움은 겪지 않아도 됩니다.
이 말은
지금 선택 때문에 고민한다는 것은
올바름을 추구하고 싶은 마음이
내 안에 조금 더 크게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선뜻 선택하기가 쉽지 않아
주저하고 있을 뿐입니다.
굳이 힘든 길을 선택할 이유가 있는지
끊임없이 자신에게 묻게 됩니다.
굳이 힘든 길을 선택할 이유는
분명히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 안에서 우리는
그 힘든 길을 선택할 수 있는
힘과 용기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