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대성전 축일에 성전에 관해 묵상해봤습니다.
성전에 관한 첫 번째 묵상: 성전은 기도하는 집이다.
오늘 미사에서는 요한복음을 읽었지만, 공관복음은 이렇게 얘기합니다.
“‘나의 집은 기도의 집이라 불릴 것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너희는 이곳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드는구나.”
하느님은 성전에만 계시는 것이 아니고 어디든지 아니 계신 곳이 없이 계시고,
그러므로 우리는 성전에서만이 아니라 어디서든지 하느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성전을 하느님이 계신 곳이고
하느님을 만나는 집이라고 하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그것은 우리의 성별 의식과 관련이 있습니다.
성별(聖別. Consecratio)이란 성유 바름을 통하여 사람이든 장소든
그것이 더 이상 다르게 쓰이지 않고 하느님을 위해서만 쓰이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기름 부음 받아 사제로 성별이 되면 하느님을 위해서만 살아야 하듯이
성전도 하느님을 위해서만 쓰이도록 성유를 발라 성별한 곳이기에
성전은 다른 어느 곳보다도 하느님을 만나는 특전적인 공간입니다
그러므로 성전에서는 하느님만 만나겠다는 우리의 의지와 의식이 필요하고,
그러므로 오늘 주님께서 비난하시는 강도들에게는
이런 의식과 의지가 없기에 성전이 하느님을 만나는 공간이 아닐 것입니다.
강도들은 어디를 가나 훔칠 생각이나 하고,
그러기에 성전에 들어가서도 금붙이로서 성작이나 찾지
하느님을 찾지 않을 것이고 그러니 하느님을 만날 리도 없을 겁니다.
성전에 관한 두 번째 묵상: 나도 성전이다.
오늘 독서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여러분이 하느님의 성전이고
하느님의 영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모릅니까?”
하느님이 계신 곳이 성전이니 나도 또 너도 성전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또한 성전 의식이 중요하고,
그래서 바오로 사도도 여러분이 성전이란 것을 모릅니까?
하고 물음으로써 우리가 성전이란 것을 의식하라고 합니다.
이것은 또한 의지와도 연결됩니다.
나는 하느님께서 머무시는 성전이니 하느님 외에는
아무도 또 아무것도 내 안에 들이지 않겠다는 의지 말입니다.
욕망이 내 안에서 꿈틀거리지 못하게 하겠다!
악감정들이 나를 사로잡지 못하게 하겠다!
유혹자와 악령들이 내 안에 똬리를 틀지 못하게 하겠다! 이렇게.
성전에 관한 세 번째 묵상: 성전은 생명과 구원의 장소다.
오늘 독서는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물에 대해 이렇게 또 얘기합니다.
“이 강이 흘러가는 곳마다 온갖 생물이 우글거리며 살아난다.”
우리가 성전이고
그래서 주님께서 우리 안에 계신다면
우리는 그분의 사랑과 생명으로 가득하고
마침내 사랑과 생명이 넘칠 것이고 내 주변의 사람들은 살아날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을 한번 돌아보고 주변을 둘러봅니다.
나에게서는 생기가 나오나 살기가 나오나?
내 주변 사람들은 활기찬가? 기죽어 있나?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