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 사람들이다.”
어머니와 형제들이 찾아왔다는 말에 주님께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실행하는 사람들이 당신의 어머니와 형제들이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을 우리는 오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주님께서 육신의 어머니와 형제 관계는 완전히 부정하고
영신의 어머니와 형제 관계만을 인정하신 거라고 오해치 말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혈연관계를 넘어 영적인 관계를 사신 것은 틀림없지만
그렇다고 어머니와 형제들을 배척하신 것으로 봐서는 안 됩니다.
그보다는 어머니 마리아를 영적인 관계의 모범으로 제시하시는 겁니다.
사실 어머니 마리아보다 영적인 관계를 더 완전히 사신 분이 있나요?
영적인 관계란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는 관계를 말하는데
오늘 주님께서는 하느님의 말씀에 의해 이 관계가 형성된다고 말씀하십니다.
마리아처럼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면 당신의 어머니가 되고,
당신처럼 하느님의 말씀을 실천하면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고 하시는 거지요.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마리아가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가 된 것은
하느님의 말씀을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임으로써 가능케 된 것입니다.
마리아는 하느님의 말씀을 인간의 말로 받아들이지 않았고,
하느님의 말씀을 인간적인 소견으로 묵살해버리지 않았으며,
하느님의 말씀을 싫다고 거부하지도 않았습니다.
사실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을 인간의 말인 줄 알고 놓치고,
하느님의 말씀을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하며 묵살을 하며,
아무리 하느님의 말씀이라도 싫다고 하며 거부한 적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하느님의 말씀을 우리가 묵살하거나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여야
하느님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여 어머니가 되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은 그저 말을 듣는 게 아니라
존재를 받아들이는 거라는 얘기이고,
그것도 하느님 존재가 우리 안에 잉태되는 거라는 얘기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의 영적인 관계를 이루는 또 다른 차원은 실천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임은 실천하기 위한 것이니
하느님 말씀을 받아들인 사람이 실천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하겠지요.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인 마리아가 그 말씀을 실천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렇긴 하지만 주님께서 <받아들임>과 더불어 <실천>을 따로 얘기하심은
조금 다른 측면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마리아처럼 받아들이고 당신처럼 실천하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하느님!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고 하는
히브리서의 말씀처럼 주님께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실천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니까 실천과 형제 관계에 대해 말씀하시는 뜻은
주님께서 아들로서 아버지의 말씀을 실천하신 것처럼
우리도 아버지의 말씀을 실천하면 주님과 마찬가지로
하느님께는 아들이 되고 주님께는 형제가 된다는 뜻인 게지요.
이렇게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천함은 우리를 고귀하게 합니다.
깡패 두목의 말을 듣고 그가 시키는 대로 하는 것과 비교해보면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천함이 우리를 얼마나 고귀케 하는지 알 수 있지요.
깡패 두목의 말을 듣는 경우 우리는 그의 똘마니로 전락하고
하수구처럼 온갖 지저분하고 나쁜 짓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때 우리는 주님의 어머니와 형제가 되어
우리가 인간에서 하느님으로 신분 상승을 하게 되며
그 실천도 사랑이라는 가장 고귀한 행위를 실천하는 것이고,
사랑은 또 다른 사람을 주님의 어머니와 형제가 되게 하지요.
우리를 당신의 어머니와 형제가 되게 하는 귀한 말씀의 초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