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1일 목요일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by 고인현 도미니코 신부 ofm
아니마또레(이태리어): '보듬어 주고 활력과 영감을 불어넣는 자'를 의미합니다.
에페소 공의회(431년)에서 하느님의 어머니로 선포한 성모님을 ‘평화의 모후’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모후’(찬미받으소서 241항)로 모시며 중동과 한반도의 평화 그리고 생태적 회심(인간영혼과 자연의 회복)을 지향하는 온라인 기도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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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부들의 말씀 묵상
그래서 어떤 이가 예수님께, “보십시오,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이 스승님과 이야기하려고 밖에 서 계십니다.” 하고 말하였다.(마태 12,47)
이 말은 ‘예수여, 그대는 땅에 뿌리를 두고 있으면서 어째서 하늘에서 왔다고 자랑하는가?’라고 한 것과 다름없었습니다. “보십시오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이 밖에 서 계십니다." 이 말에는 인간에게서 태어난 이는 하느님의 아들일 수 없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그대는 본성이 드러내 준 이를 부인할 수 없다는 뜻이지요.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사람 모습을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악마인 그자를 바라보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 48절). 이 말은 세상의 기초가 생겨나기 전에 난 내게는 이 세상에 친척이라고는 없다. 태초에 이미 하느님과 함께 있었던 나는, (포티누스가 믿는 것과 달리), 육의 시작을 알지 못한다. 너희가 내게서 보는 단지 사람에 지나지 않는 모습은 하느님이며 인간인 나의 본성이 아니라 옷일 뿐이다’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당신의 제자들을 가리키시며 이르셨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예수님께서는 탄생의 과정을 모욕하지도, 인간의 몸을 지니심올 부끄러워하지도 않으시면서 답을 주셨습니다. 그분은 육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 관계보다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영적 관계가 먼저여야 함을 가르치고자 하셨습니다.
-마태오 복음 미완성 작품-
생태 영성 영적 독서
마이스터 엑카르트는 이렇게 말했다(대지를 품어 안은 엑카르트 영성) / 매튜 폭스 해제 · 주석
【둘째 오솔길】
버림과 그대로 둠
설교 13
하느님 바깥에 있는 것은 무일 뿐이다
모든 이의 아버지 하느님도 한 분이십니다(에페 4,6).
현자는 말합니다. “천사의 본성은 아무 기능도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오로지 하느님만을 알 따름이다. 천사들은 하느님 이외의 것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 그러므로, 현자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하느님은 하나이시고 만물의 아버지이시다. 벗이여, 저 윗자리에 올라앉게나." 영혼의 기능 가운데 일부는 외부의 인상을 받아들입니다. 눈을 예로 들어 봅시다.
눈은 꺼칠꺼칠한 것을 버리고, 깨끗한 사물을 끌어당깁니다. 눈은 외부에서 무언가를, 곧 “지금 여기”와 관계가 있는 것을 받아들이지만, 오성과 이성은 모든 것의 껍질을 벗겨, “지금 여기”와는 무관한 것을 알아냅니다.
이러한 추상 능력 속에서 이성은 천사의 본성과 접촉하지만, 그것은 오감으로부터 받아들인 것일 따름입니다. 이성은 오감이 외부로부터 받아들인 것만을 받아들일 따름입니다. 그러나 의지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이 점에서 의지는 이성보다 고귀하다고 하겠습니다. 의지는 순수한 앎, 곧 “지금 곰 여기”와는 무관한 앎에서만 받아들입니다. 의지가 제아무리 높고 깨끗하다고 해도, 하느님은 의지가 더 높은 자리에 올라앉아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초대한 이가 와서 ‘위쪽으로 오르시지요’ 하면 당신은 함께 자리한 모든 이 앞에서 영광스럽게 될 것입니다(루가 14,10).(283)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다락방 11월 3주간
<금주간 성서읽기> 히브 10-13장 / 야고 1-5장
<생태 문화 주간> 음악/미술/독서 등. 생태 품앗이
목요일 성모님의 날
<파티마의 성모 마리아와 목동 / 세 바르따스>
제 5 장 두 천사 세상을 떠나다
“원하시는 것은 무엇이든지”
앞에서 본 바와 같이 히야친따는 곧 천국으로 가려는 오빠편에 “원하시는 것은 무엇이든지 참겠습니다”고 예수님과 성모님께 말씀을 전해 드렸기에 반드시 그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귀부인께서 내밀하게 하신 말씀과 부탁받은 비밀에 대한 이야기를 서로 나누기 위해서는 그녀에게는 이제 루치야뿐이었다. 그런데 루치아는 거의 종일 학교에 가야 했으므로 이것이 히야천따에게는 제일 힘든 고행이었다. 감수성이 강한 그녀로서는 퍽이나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루치아는 히야친따의 이러한 마음을 메워 주려고 그녀가 제일 좋아하는 꽃을 꺾어 가지고 가서 위로하는 것이었다. 루치아는 틈을 타서 예전에 함께 가서 기도하고 눈물을 흘렸던 그리운 카베소의 동굴에 가서 홀로 고요히 묵상하고, 앓고 있는 친한 벗을 위해 기도드린 다음 산마루에 피어 있는 백합화, 들목단, 그밖에 히야친따가 좋아하는 꽃을 꺾어 꽃다발을 만들어 병실을 찾았다.
“어머 이건 카베소의 꽃이구나!"
바라보는 소녀의 눈에는 눈물이 빛났다.
“나는 이제 그 언덕에 갈 수 없구나. 왈린 호스에도, 고바 다 이리아에도 갈 수 없게 되었구나. 정말 싫어 얘"
“그렇지만 히야는 천국에 가서 예수님과 성모님을 만날 수 있는데 그까짓것 아무려면 어떠니!"
“참 그렇구나"
히야친따는 즉시 명랑해쳤고 꽃다발에 감탄하며 한 가지 한 가지의 꽃을, 그리고 각 꽃마다의 꽃잎을 넘치는 감동으로 들여다보였다.
참으로 차차 시들어 가는 그 꽃은 딱하게도 나올 가망 없이 날이 갈수록 기진해지는 이 소녀의 건강과도 비슷하였다. (1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