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대장이 예수님께 도움을 청합니다.
직접 가서 그 청을 들어주시겠다는
예수님의 말씀에
백인대장은 그저 한 말씀만 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내가 청한 것이 정말 이루어지는지
눈으로 보고 싶은 것이 인간의 마음일텐데
그는 예수님의 말씀 한 마디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의 믿음으로
그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게 됩니다.
인간은 감각을 가진 존재입니다.
감각을 통해 밖에서 오는 정보를 얻습니다.
춥다고 느끼면 옷을 더 입고
앞에 있는 위험한 상황을 보면 피해 갑니다.
감각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만큼
우리는 또한 감각에 의존합니다.
그러다보니 감각적으로 다가갈 수 없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믿기 어려워집니다.
과학과 기술이 발전하면서
더 멀리, 더 자세히 볼 수 있게 되면서
보이지 않는 신은 점점 더 믿기 어려워졌습니다.
이렇게 보면 감각과 믿음은
서로 반대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구약에서 하느님은 볼 수 없는 분이셨습니다.
모세 이후로 하느님을 직접 본 사람은 없습니다.
하느님을 볼 수 없기에
누구는 하느님께서 어디에 계시냐고 묻기도 했습니다.
볼 수 없다는 것은
계시지 않는다는 것과 같은 뜻으로 보였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하느님께서는
무조건 믿으라고 말씀하지는 않으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백인대장에게
직접 가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2천년 전에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직접 오셨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모습을 직접 드러내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의 감각을 무시하지 않으십니다.
하느님께서 믿음만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하지만 감각만 생각하는 것은
신앙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즉 하느님께서 당신을 드러내신 것을 직접 보는 감각과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받아들이는 믿음이
함께할 때
참된 신앙생활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지금 감각으로
하느님을 보고 만지고 느낄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언젠가는 볼 수 있으리라 희망하면서
우리의 믿음에 머물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탄은 우리에게
또 다른 희망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2천년 전에 당신을 직접 드러내셨던 하느님께서는
또 다시 우리에게 당신을 드러내시려
우리에게 다가오고 계십니다.
그 희망을 안고
오늘을 살아갈 수 있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