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는 오늘 말씀에서
사람들을 구분하십니다.
한쪽에서는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
그리고 다른 한쪽에서는 철부지들.
복음의 마지막에서 이 구분은 한 번 더 나타납니다.
많은 예언자와 임금을
제자들과 구분하십니다.
오늘의 주제는 드러내 보여주심입니다.
하느님께서 누구에게는 보여주시고
누구에게는 감추신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오늘 복음의 가운데 부분을 보면
드러내 보여주시는 것은
선택 받은 이들에게만 가능한 것처럼 나타납니다.
물론 하느님의 자비를 생각하면
누구만 선택받고 누구는 제외되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다가오시고 당신을 드러내십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나타나는 어려움은
그 하느님을 알아보지 못한다는 것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을 때
사람들은 이미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자신들이 기다리는 메시아는
어떤 모습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것은 근거 없는 상상이 아니라
성경에 바탕을 둔 생각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다니엘서가 말하는
구름을 타고 오는 사람의 아들 모습입니다.
그러나 막상 그들 앞에 나타난 메시아는
약한 아기의 모습이었습니다.
더 나아가 말이 아닌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 모습은 자신들의 생각과 달랐기에
그런 그분을 메시아로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여기에서의 안타까움은
나귀를 타고 들어가시는 모습도
성경에 있다는 것입니다.
즉 그들의 지혜는 성경의 일부분만 가지고 말하는
불완전한 지혜입니다.
자신들이 잘 모를 수 있다는 것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기에
다가오시는 하느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행복의 기회를 놓치게 됩니다.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서
하느님을 만나려는 의지도 중요합니다.
그렇지만 하느님을 만나려는 노력에
한계가 있다는 것도
함께 생각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만남은 나 혼자 찾아서 하는 것이 아니라
즉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서로의 노력
드러내 보여주시는 하느님과
찾으려는 인간이 함께할 때 가능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