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만군의 주님께서는 이 산 위에서 모든 민족들을 위하여
살진 음식과 잘 익은 술로 잔치를,
살지고 기름진 음식과 잘 익고 잘 거른 술로 잔치를 베푸시리라.”
오늘도 어제 그제와 마찬가지 구조입니다.
독서 이사야서의 예언이 복음의 예수님에 의해 실현되는 구조입니다.
만군의 주님께서 산 위에서 잔치를 베푸실 거라는 이사야 예언대로
복음의 주님께서 산 위에서 사천 명을 위한 잔치를 베푸십니다.
그런데 눈치채셨겠지만 이 잔치는 등산객들의 술판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 세상의 거한 파티를 즐기는 이들의 잔치도 아닙니다.
이사야서도 그렇고 복음도 그런데 이 산 위에 오를 이들은
모두 다리 절고 눈멀고 말 못하는 불구자들이며
그래서 세상에서 수치를 당하고 눈물을 흘리는 이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에 오르시어 거기에 자리를 잡고 앉으셨다.
그러자 많은 군중이 다리 저는 이들과 눈먼 이들과 다른 불구자들과
말 못하는 이들과 또 다른 많은 이들을 데리고 예수님께 다가왔다.”
사실 건강하고 이 세상에서 잘 나가는 사람들이 굳이 산에 오르진 않을 것입니다.
불구자들과 불구로 인해 수치와 설움을 당하는 이들이나
산 위에서 치유와 위로와 구원을 받기 위해 오를 것입니다.
“이 산 위에서 주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의 얼굴에서 눈물을 닦아내시고
당신 백성의 수치를 온 세상에서 치워주시리라.”
이제 이해가 됩니다.
왜 주님께서 다리 저는 이들을 산에 오르게 하시는지.
평지도 걷기 힘든데 다리 저는 이들이 왜 산을 오르는지.
왜 앞을 못 보는 이들을 주님께서 산에 오르게 하시는지.
도우미 없으면 오를 수 없는 산을 왜 맹인들이 오르는지.
이 산을 오르게 하는 것은 성한 다리가 아닙니다.
이 산을 오르게 하는 것은 올라야만 할 필요이고,
오르고자 하는 열망입니다.
다리가 성해 이 세상 여기저기 신나게 구경 다니고 싸돌아다니느라
산에 가는 것은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는 우리는 아닌지
돌아보는 오늘 우리입니다.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