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년 12월 18일 수요일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by 고인현 도미니코 신부 ofm
아니마또레(이태리어): '보듬어 주고 활력과 영감을 불어넣는 자'를 의미합니다.
에페소 공의회(431년)에서 하느님의 어머니로 선포한 성모님을 ‘평화의 모후’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모후’(찬미받으소서 241항)로 모시며 중동과 한반도의 평화 그리고 생태적 회심(인간영혼과 자연의 회복)을 지향하는 온라인 기도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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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부들의 말씀 묵상✝️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고 또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으므로,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작정하였다.(마태 1,19)
요셉의 생각
아마 요셉은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내가 마리아의 죄를 덮어 준다면 하느님의 율법을 어기는 것이고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서 그 일을 밝힌다면 그들은 마리아를 돌로 쳐 죽일 것이다. 혹시 마리아의 임신은 거룩한 분의 개입으로 이루어진 일이 아닐까? 사라도 아흔 살 나이에 임신하여 아이를 낳지 않았던가? 하느님께서는 마른 장작 같은 여인이 꽃을 피우게 하셨는데, 신께서 마리아가 남자의 도움 없이 아기를 잉태하기 원하셨다면?
여자의 임신이 남자에게 달렸는가? 여자의 임신이 언제나 남자에게 달렸다면, 남자가 원해야 여자가 임신하는 것이 확실하다. 그러나 이 경우는, 남자가 여인이 임신하기를 원해서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원하셔서 그렇게 되었다. 그러니 여자의 임신이 남자가 아니라 하느님께 달렸다면,하느님께서 그 여자가 남자 없이 자식을 낳기 바라시는 것이 무엇이 그리 놀라운가?
그러니 나는 어찌해야 하는가? 마리이를 조용히 멀리 보내야겠다. 정황이 불확실한 경우라면 죄 없는 사람이 죽임올 당하는 것보다는 누구나 아는 창녀가 벌 받지 않고 빠져나가는 편이 낫다. 의로운 사람이 부당하게 죽임을 당하는 것보다 불의한 사람이 정당하게 벌을 피하는 편이 실로 정의에 더 가깝다. 죄 있는 사람이 벌을 한 번 피한다 해도, 다음번에는 죽을 수 있다. 그러나 죄 없는 사람이 죽으면 그를 되살릴 수 없다.’
-마태오 복음 미완성 작품-
✝️ 생태 영성 영적 독서✝️
마이스터 엑카르트는 이렇게 말했다(대지를 품어 안은 엑카르트 영성) / 매튜 폭스 해제 · 주석
【둘째 오솔길】
버림과 그대로 둠
설교 14
하느님이 그대 안에서 하느님 되게 하라
하느님의 사랑은 이렇게 우리 가운데 나타났습니다(1요한 4,9)
둘째로, 여러분은 마음이 깨끗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세속적인 모든 것을 여읜 마음만이 순수하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여러분은 없는 것(無)이 없어야 합나다. 사람들은 지옥이 무엇을 불사르느냐고 묻습니다. 영성의 대가들은 지옥이 의지를 사른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나는 없는 것이 지옥에서 불타고 있다고 말하겠습니다. 다음의 비유를 알아들으시기 바랍니다. 이글거리는 숯불이 내 손에 놓여 있다고 상상해 봅시다. 만일 내가 숯불이 내 손에서 타고 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틀린 말일 것입니다. 나를 사르고 있는 것을 정확히 말하면, 내게 없는 것이 그렇게 하고 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숯불은 내 손이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게 “없는 것”이 나를 사르는 것입니다. 하지만 내 손에 숯불이 가지고 있는 것이 들어 있고, 내 손이 그것을 견딜 수 있다면,내 손은 불의 본성과 완전히 똑같은 것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설령 어떤 사람이 이글거리는 불덩이를 내 손에 놓을지라도,그 불덩이가 나에게 고통을 주지 못할 것입니다. “하느님과, 하느님을 관상하면서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 안에는, 하느님을 멀리하는 사람들에게는 없는 무언가가 들어 있습니다. 이 ‘없는 것’이 지옥에서 영혼에게 고통을 주는 것이지, 의지나 어떠한 불꽃이 고통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없는 것”이 여러분에게 있으면 있을수록, 그만큼 여러분은 완전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완전해지고 싶거든, “없는 것”이 없게 하십시오.(298)
✝️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다락방 12월 3주간✝️
<금주간 성서읽기> 묵시 7-14장
<생태 문화 주간> 음악/미술/독서 등. 생태 품앗이
✝️ 수요일 그리스도인 일치의 날✝️
세계 교회사, 아우구스트 프란츤
제 2부 중세 그리스도교
제 3기 : 1050 ∼ 1300년
중세 중기 교회의 전성
제 9절: 인노첸시오 3세부터 보니파시오 8세까지의 교황직
교황권과 슈타우펜 제국 사이의 결전:
인노첸시오4세(1243-1254)는 이 위험을 인식하고 있었다. 그후 수년 동안 양측에서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다. 프리드리히는 제1차 리옹 공의회(1245)에서 다시 파문되었다. 수없이 쏟아져나온 논란서들이 이 전쟁을 지지하였다. 사람들은 그것이 서구세계 질서의 근본적인 문제와 관련된 것임을 점점 뚜렷하게 깨달았다. 인노첸시오는 슈타우펜 왕가의 포위 위험에서 더이상 피하는 일이 없기 위하여 남부 이탈리아와 시칠리아와 나폴리를 교황의 봉토로서 앙주의 샤를에게 양도하였다. 황제권은 프리드리히 2세의 사망(1250) 후 다시 한번 무서운 위기에 빠졌다. 독일에서는 이중 선거가 평온을 뒤흔들었다. 이탈리아에서는 콘라트 4세(1250-1254)가 슈타우펜 왕가의 유산을 유지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그가 26세로 사망하자 그의 이복 형제인 만프레드는 그의 조카로 “슈타우펜 왕가의 마지막 사람”인 겨우 2세 된 콘라딘으로 하여금 이탈리아의 지배를 유지시키려고 노력하였다. 만프레드의 사망(1226) 후, 연소한 콘라딘은 남부 이탈리아에 있는 자신의 제국을 탈환하기 위해 1267년 가을에 대담하게 출정하였다. 그는 탈리아코에서 샤를에게 패하고, 열두 명의 충신들과 함께 1268년 10월 29일에 나폴리에서 참수되었다. 이로써 슈타우펜 왕가는 비극적인 종말을 고하였고, 황제권은 참혹하게 파괴되고 말았다.
그러나 교횡권도 더없이 타격을 받았다. 그것은 퓌로스적 숭리였으므로 교황권의 보편적인 지위를 오래 주장할 수가 없었다. 교황권은 특수 이해를 가지고 분기하고 있는 민족국가들에 대항하기 위해 기댈 데가 없었다.
서구 공동체의 해체는 빨리 진행되고 있었다. 프랑스는 이제 유럽의 가장 강한 세력이었다. 교황직이 방금 획득한 그 우위를 민족적인 프랑스 왕국에게 양도해야 할 시점은 이제 멀지가 않았다. 교황권은 불명예스럽게도 프랑스에 예속되게 되었다.(2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