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월 6일 월요일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by 고인현 도미니코 신부 ofm
아니마또레(이태리어): '보듬어 주고 활력과 영감을 불어넣는 자'를 의미합니다.
에페소 공의회(431년)에서 하느님의 어머니로 선포한 성모님을 ‘평화의 모후’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모후’(찬미받으소서 241항)로 모시며 중동과 한반도의 평화 그리고 생태적 회심(인간영혼과 자연의 회복)을 지향하는 온라인 기도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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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부들의 말씀 묵상
그리고 나자렛을 떠나 즈불룬과 납탈리 지방 호숫가에 있는 카파르나움으로 가시어 자리를 잡으셨다.(마태 4,13)
유혹을 찾아 나서지 마라
예수님께서는 왜 물러가셨을까요? 주님께서는 지금 우리에게, 유혹을 찾아 나서지 말고 그 영향이 미치는 곳에서 물러가라고 가르치고 계십니다.
일부러 찾아서 자신을 위험에 빠뜨리지 않는 것은 탓할 일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우연히 위험에 빠졌을 때는 씩씩하게 견뎌 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것을 가르치는 한편 유대인 지도자들의 분노를 가라앉히시려고 카파르나움으로 물러가셨고, 그럼으로써 이사야의 예언이 이루어졌습니다(이사 9,1-2 참조.>.
-요한크리소스토무스-
생태 영성 영적 독서
마이스터 엑카르트는 이렇게 말했다(대지를 품어 안은 엑카르트 영성) / 매튜 폭스 해제 · 주석
【둘째 오솔길】
버림과 그대로 둠
설교 14
하느님이 그대 안에서 하느님 되게 하라
하느님의 사랑은 이렇게 우리 가운데 나타났습니다(1요한 4,9)
하느님을 긴의자 밑으로 밀어 넣는 짓은 우리가 만든 안경을 위해 하느님을 쫓아 버리는 것과 같은 짓이다. 우리는 하느님이 일하는 것을 보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하느님에게 두터운 외투를 덮어씌워 긴 의자 밑으로 밀어 넣는 짓이다. 그만큼 우리는 우리의 쇼에 홀릴 수 있다. 엑카르트는 하느님을 부려먹는 짓을 멸시한다. 그는 심지어 종교적인 목적으로 하느님을 이용하는 행위마저 거부한다.
여러분은 하느님을 동원하여 아무개를 찾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마치 하느님을 촛불로 만들어 무언가를 찾듯이 행동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찾고 있던 무언가를 찾으면 춧불을 던져 버립니다. 여러분이 하느님을 부려서 무언가를 찾는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그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여러분이 찾고 있는 게 이익이든 보상이든 영성이든 다른 것이든 간에,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여러분이 쓸데없는 것을 찾고 있기에 아무것도 찾지 못하는 것입니다.(308)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다락방 1월 1주간
<금주간 성서읽기> 1.2.3요한 / 요한 1-4장
<생태 돌봄 주간> 자신. 이웃. 동물과 식물. 자연환경
월요일 거룩한 독서(렉시오 디비나)의 날
요한 1,1-14
머리글
한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말씀은 하느님이셨다.
그분께서는 한처음에 하느님과 함께 계셨다.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고 그분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지만 어둠은 그를 깨닫지 못하였다.
하느님께서 보내신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요한이었다.
그는 증언하러 왔다. 빛을 증언하여 자기를 통해 모든 사람이 믿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 사람은 빛이 아니었다. 빛을 증언하러 왔을 따름이다.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빛이 세상에 왔다.
그분께서 세상에 계셨고 세상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지만 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그분께서 당신 땅에 오셨지만 그분의 백성은 그분을 맞아들이지 않았다.
그분께서는 당신을 받아들이는 이들, 당신의 이름을 믿는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권한을 주셨다.
이들은 혈통이나 육욕이나 남자의 욕망에서 난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난 사람들이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신 아버지의 외아드님으로서 지니신 영광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