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에 예수님께서 산에 올라가시어,
당신께서 원하시는 이들을 가까이 부르시니 그들이 그분께 나아왔다.
그분께서는 열둘을 세우시고 그들을 사도라 이름하셨다.”
오늘 복음은 너무도 많이 들은 복음이지만
오늘은 ‘당신께서 원하시는 이들’이라는 말씀이 특히 눈에 들어오면서
나는 주님께서 원하시는 사람일까 하는 묵상을 저절로 하게 됐습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주님께서 원하시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 볼 일입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보시고 난 뒤에 원하시게 되었을까요?
제 생각에 그런 것이 아닐 것입니다.
보시고 마음에 들어 원하시게 된 것이 아니라 보시기도 전에 원하셨을 것입니다.
이는 마치 태어나기도 전에 손주를 원하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할아버지는 어떤 손주 이전에 손주를 원하듯
주님께서도 어떤 제자 이전에 사도를 원하셨고
그래서 누구든 사도로 뽑으셨을 것이고 그래서 ‘어떤’이 중요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제가 옛날에 나 중심이고 그래서 사랑이 부족할 때는
내 마음에 드는 어떤 사람이기를 원했고 그런 사람을 사랑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것이 전보다 많이 나아졌습니다.
그가 어떤 사람이기를 원하지 않게 되었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기를 원하게 되었으며
조건 없이 사랑할 수 있는 나이기를 원하게 되었습니다.
저도 이러하니 주님께서는 얼마나 더 무조건 사랑하시고 원하셨을까요?
사실 사도들의 면면을 보면 주님 교회의 열두 기둥이 되기에 부족한 분들이지요.
주님께서는 마찬가지로 저를 있는 그대로 원하시고 사랑하실 겁니다.
주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준마를 원하지 않으시고
한 번도 사람을 태워본 적이 없는 어린 나귀를 원하셨듯이
저를 사랑하기를 원하셨고 제가 당신 사도 되기를 원하실 것입니다.
그러니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사랑의 대상으로 삼아 주시고 당신 사도로 뽑아주심에.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