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주 너의 하느님께 너를 위하여 표징을 청하여라.
아무 것이나 청하여라. 저는 청하지 않겠습니다.”(1독서)
“보십시오.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려 왔습니다.”(2독서)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복음)
“청하지 않고 이루겠습니다.”
저는 오늘, 이것을 오늘 축일의 주제로 삼았습니다.
이 말은 제가 원하는 것을 청하지 않고,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제가 이루겠다는 말의 준 말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말하느냐에 따라
이 말은 매우 오만한 말이 될 수도 있습니다.
부자가 가난한 사람에게 청할 것이 무엇 있겠습니까?
오히려 내키면 그가 원하는 것을 너그럽게 들어줄 뿐이지요.
그런데 성 마리아가 이렇게 말했다면 분명 다른 뜻일 겁니다.
마리아는 가난하고
마리아는 겸손하고
마리아는 하느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우선 마리아는 가난합니다.
청원치 않겠다는 것은 무욕無慾이라는 얘깁니다.
빈 자궁, 가난한 자궁을 지니겠다는 얘깁니다.
말씀을 잉태하고 출산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는 자기 자궁을 말씀이 아닌 다른 욕심으로 채우기 위해
청할 것이 너무도 많은 우리를 부끄럽게 합니다.
두 번째로 마리아는 겸손합니다.
마리아는 고백합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그러니 청하지 않음은 교만해서가 아니라
종이 어떻게 청할 수 있겠느냐는 자세의 표현입니다.
종이 주님께 청할 수도 있고 청할 것도 있겠지만
청하기에 앞서 주인님이 원하시는 것을 받들어야 한다는 자세입니다.
이는 주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왔다고 하기보다는
내 뜻대로 되게 해달라고 강요성 기도를 하는 우리를 부끄럽게 합니다.
마리아는 무엇보다도 주님을 사랑합니다.
마리아는 자신을 주님의 종이라고 하지만
설마 하느님께서 주님의 어머니를 종으로 만드셨겠습니까?
당신 사랑의 대상으로 삼으시어 말씀이신 주님을 잉태케 하셨겠지요.
설마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마리아를
당신의 사랑하는 아드님을 잉태하고 출산할 어머니로 삼으셨겠습니까?
예컨대 귀찮게 한다고 애를 미워하고 그래서 애를 낳기만 하고
어떻게 크는지 신경 쓰지 않는 여자를 누가 아내로 삼겠습니까?
그러니 마리아는 자신을 종이라 하지만
사랑하기에 기꺼이 종이 되는 그런 어머니다운 사랑의 여인입니다.
이는 주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종이 되고 어머니 될 생각은 하지 않고
그저 어리광부리며 이거 해 달라, 저거 해 달라 떼를 쓰는
우리의 철부지 사랑을 부끄럽게 합니다.
아무 것이나 청하여라. 저는 청하지 않겠습니다.”(1독서)
“보십시오.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려 왔습니다.”(2독서)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복음)
“청하지 않고 이루겠습니다.”
저는 오늘, 이것을 오늘 축일의 주제로 삼았습니다.
이 말은 제가 원하는 것을 청하지 않고,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제가 이루겠다는 말의 준 말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말하느냐에 따라
이 말은 매우 오만한 말이 될 수도 있습니다.
부자가 가난한 사람에게 청할 것이 무엇 있겠습니까?
오히려 내키면 그가 원하는 것을 너그럽게 들어줄 뿐이지요.
그런데 성 마리아가 이렇게 말했다면 분명 다른 뜻일 겁니다.
마리아는 가난하고
마리아는 겸손하고
마리아는 하느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우선 마리아는 가난합니다.
청원치 않겠다는 것은 무욕無慾이라는 얘깁니다.
빈 자궁, 가난한 자궁을 지니겠다는 얘깁니다.
말씀을 잉태하고 출산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는 자기 자궁을 말씀이 아닌 다른 욕심으로 채우기 위해
청할 것이 너무도 많은 우리를 부끄럽게 합니다.
두 번째로 마리아는 겸손합니다.
마리아는 고백합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그러니 청하지 않음은 교만해서가 아니라
종이 어떻게 청할 수 있겠느냐는 자세의 표현입니다.
종이 주님께 청할 수도 있고 청할 것도 있겠지만
청하기에 앞서 주인님이 원하시는 것을 받들어야 한다는 자세입니다.
이는 주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왔다고 하기보다는
내 뜻대로 되게 해달라고 강요성 기도를 하는 우리를 부끄럽게 합니다.
마리아는 무엇보다도 주님을 사랑합니다.
마리아는 자신을 주님의 종이라고 하지만
설마 하느님께서 주님의 어머니를 종으로 만드셨겠습니까?
당신 사랑의 대상으로 삼으시어 말씀이신 주님을 잉태케 하셨겠지요.
설마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마리아를
당신의 사랑하는 아드님을 잉태하고 출산할 어머니로 삼으셨겠습니까?
예컨대 귀찮게 한다고 애를 미워하고 그래서 애를 낳기만 하고
어떻게 크는지 신경 쓰지 않는 여자를 누가 아내로 삼겠습니까?
그러니 마리아는 자신을 종이라 하지만
사랑하기에 기꺼이 종이 되는 그런 어머니다운 사랑의 여인입니다.
이는 주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종이 되고 어머니 될 생각은 하지 않고
그저 어리광부리며 이거 해 달라, 저거 해 달라 떼를 쓰는
우리의 철부지 사랑을 부끄럽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