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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인현 도미니코 신부 ofm
아니마또레(이태리어): '보듬어 주고 활력과 영감을 불어넣는 자'를 의미합니다.
에페소 공의회(431년)에서 하느님의 어머니로 선포한 성모님을 ‘평화의 모후’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모후’(찬미받으소서 241항)로 모시며 중동과 한반도의 평화 그리고 생태적 회심(인간영혼과 자연의 회복)을 지향하는 온라인 기도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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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마르 8,36)
세상에 대한 올바른 사랑
그대는 세상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창조주를 세상보다 앞세워야 합니다. 세상은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세상을 창조하신 분은 훨씬 아름답습니다. 세상은 감미롭지만 세상을 창조하신 분은 더욱 감미롭습니다.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세상에 대한 사랑이 우리를 짓누르지 않고, 피조물을 창조주보다 더 사랑하지 않도록 힘껏 노력합시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마음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여 당신을 사랑하도록(참조: 신명 10,12; 마태 22,37) 지상 사물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가끔 하느님의 선물을 하느님보다 더 사랑함으로써 하느님의 노여움을 불러일으키기도 합니다. 인간관계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지곤 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자기가 돌보아 주고 있는 이에게 특별한 선물을 주었다고 합시다. 그러나 그가 선물을 준 사람을 얄잡아 보고 선물을 준 사람보다 선물을 더 사랑하기 시작한다면, 선물을 준 사람은 더 이상 그를 벗으로 여기지 않고 원수처럼 경멸하고 미워할 것입니다. 하느님과 우리의 관계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가 주는 선물보다 우리를 더 사랑하는 사람들을 우리가 더 사랑하듯, 하느님께서도 당신께서 주신 지상 선물보다 당신을 더 사랑하는 사람들을 사랑하십니다.
-아를의 카이사리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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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스터 엑카르트는 이렇게 말했다(대지를 품어 안은 엑카르트 영성) / 매튜 폭스 해제 · 주석
【둘째 오솔길】
버림과 그대로 둠
설교 16
의지를 버려라
모세는 그의 하느님 야훼께 애원했다(탈출 32,11).
우리는 하느님의 뜻에 따른 고통을 우리의 행복으로 여기고, 성모와 모든 성인이 누리고 쌓은 행복과 완덕을 하느님의 뜻으로 돌려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영원한 아픔과 쓰라린 고통을 달갑게 견뎌야 할 것입니다. 잠시라도 이 모든 고
통에서 벗어나려고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실로 우리는 상황이 바뀌기를 바라는 마음을 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의 뜻이 하느님의 뜻과 하나가 되어, 그 결과로 하나 됨이 이루어지면, 하늘나라에 계신 아버지께서 나와 더불어 자신 속에서 자신의 아들을 낳으실 것입니다.
“나와 더불어 그분 자신 속에서”라고 한 것은, 내가 그분과 하나가 되었고, 그분도 나를 물리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러한 하나 됨 속에서 성령은 자신의 존재와 자신의 일과 자신의 운명을 하느님과 나에게서 받습니다. 왜냐하면 나야말로 하느님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이 모든 것을 나에게서 받지 않는다면, 그것들을 하느님에게서도 받을 수 없습니다. 하느님은 어떤 식으로도 나를 물리칠 수 없습니다. 모세게는 백성을 백성을 향한 하느님의 영광이 그 자신의 행복보다 더 귀했습니다. 그만큼 모세의 뜻은 하느님의 뜻과 일치했던 것입니다.(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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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간 성서읽기> 마태 5-8장
<생태 문화 주간> 음악/미술/독서 등. 생태 품앗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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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구스티노
프로바에게 보낸 편지 130
아우구스티노는 지치지 않고 기꺼이 많은 편지들을 쓴 사람이다. 그는 다방면으로부터 주어지는 수많은 일들을 처리하고 조언을 주고 해야 하는 바쁜 상황에 있었고. 주교라는 높은 지위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그에게 해 오는질문들에 섬세하게 대답하는 성실함을 가졌었다. 그렇게 하여 기록한 그의 펀지들은 종종 작은 소책자로 엮어져 사람들 사이에서 읽혀지곤 했다. 프로바라는 과부에게 기도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쓴 편지 130도 이러한 종류의 소책자로 엮어졌다. 과부인 프로바는 410년에 고트족의 알라리크(Alarichs Goten)가 로마를 점령할 때 피난하여 아프리카로 건너온 사람이었다. 그녀는 아우구스티노 주교에게 기도에 대해 가르쳐 달라고 청했다. 우구스티노는 당시 생각할 수도 없었던 일인, 로마가 점령당하기도 하는 엄청난 문화적 충격을 받은 이 부유한 로마인의 불쌍한 처지에 연민의 정을 가지게 되어 섬세한 마음으로 배려했다. 그는 정치적으로 위로받을 곳이 없는 비참한 삶의 현장을,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일반적인 처지와 비슷한 것으로 간주했다. 어떤 즐거움도, 어떤 재물도 인간 안에 깊이 들어 있는 행복을 향한 동경을 채워줄 수 없다. 외적으로 채워지는 것들은 단지 피상적인 욕구들을 잠시 잠재워주기만 할 뿐이거나 사람을 속이는 환영에 지나지 않는 것일 뿐이다. 인간 안에 들어 있는 깊은 동경은 결국 하느님을 향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 세상의 피상적인 것들로는 결코 만족하게 채워질 수 없다.
도입
그리스도의 봉사자이고 그리스도의 봉사자들의 봉사자인 주교 아우구스티노는 신심 깊은 하느님의 봉사자인 프로바 자매께 주님 안에서 인사드립니다.(2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