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부족한 것이 하나 있다. 가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오늘 주님께서 재물과 보물을 말씀하십니다.
재물을 다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고 주님을 따르면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재물과 보물의 차이를 묵상해봤는데
제 생각에 재물은 필요한 것이고 그 이상이 아닙니다.
돈을 똥 보듯 하라고 하지만 우리의 실제 삶에서는 돈이 얼마나 필요합니까?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렇습니다.
실제 삶에서는 돈이나 재물 없이 살아가기가 어렵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보물로 여길 것까지는 없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칼이 필요하지만
그것을 내 보물 1호로 정하고 애지중지할 필요까지는 없잖아요?
그런데 임금이 신임의 표시로 장수에게 장검을 선물하였다면
그것은 필요 때문이 아니라 임금의 사랑과 신임의 표시이기에
그 장수는 그것을 보검으로, 자기 보물 1호로 여길 수는 있겠지요.
이렇듯 보물이란 필요한 것을 넘어 애지중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애지중지(愛之重之)란 말이 어떤 뜻입니까?
사랑하고 소중히 여긴다는 뜻이 아닙니까?
거듭 말하지만 재물은 필요한 것이지 사랑할 것이 아니고,
소중히 여긴다 해도 보물처럼 소중히 여길 것은 아닙니다.
오늘 부자의 문제는 재물을 생명보다 소중히 여긴 것입니다.
스스로 영원한 생명을 받는 법을 알려달라고 왔던 그입니다.
그런데 영원한 생명을 받으려면 재물을 버리라고 하니 포기치 못합니다.
결과적으로 재물을 생명 그것도 영원한 생명보다 보물로 여긴 셈입니다.
그런데 나이를 먹을 만큼 먹은 우리는 압니다.
건강이 제일 중요하고 생명은 더 중요하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도 처음부터 그것을 안 것은 아닙니다.
젊었을 때는 건강이 그렇게 소중한지 몰랐기에 몸을 상해가며 돈을 벌었는데
그렇게 자신하던 건강을 잃고 나서야 건강이 재물보다 소중함을 알게 됐지요.
아무튼 부자는 마태오 복음이 젊은이라고 하듯 젊었기 때문인지
재물을 아직 보물로 여겼기에 버릴 수 없었고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또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이라고 한 마태오복음과 달리
마르코복음이 영원한 생명을 ‘받으려면’이라고 한 점을 보게 되는데,
자기가 얻는 게 아니라 누군가에게 곧 주님께 받는 것이라면
받기 위해서 비워야 한다는 것을 그가 모르는 것이 아닙니까?
양동이에 물을 받으려면 양동이에 있는 것을 비워야 받을 수 있는 거잖아요?
그런데 쥐고 있으면서 또 쥐려는 어리석음이 보통 부자들의 어리석음이고,
재물도 소유하면서 영원한 생명도 소유하려는 것이 또한 부자들의 어리석음입니다.
부자의 더 어리석음은 주님보다 재물을 더 사랑한 점입니다.
재물 때문에 주님을 따르지 않은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아주 부잣집 아들이 집안이 반대하는 여인을 사랑하기에 재산을 다 포기하고
여인을 선택하는 것을 볼 때 그가 여인을 사랑한다는 것을 알 수 있듯이
우리가 주님을 재물보다 더 사랑하는지는
주님을 사랑하기에 재물을 버리고 주님을 따라갈 때 알 수 있습니다.
아무튼 부자는 영원한 생명을 받고자 했지만
재물을 보물로 소중히 여기는 어리석음 때문에,
주님을 재물보다 더 사랑하는 어리석음 때문에
주님을 따르는 것도,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도 다 실패했습니다.
그런데 나는 부자가 아니라고요?
재물을 보물로 여기는 사람이 부자입니다.
나는 어리석지 않다고요?
주님을 따르지 않으면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나에게는 부족한 것이 하나도 없다고요?
모든 것을 가난한 이들과 나누지 못함이 나의 부족함입니다.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