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y 고인현 도미니코 신부 ofm
아니마또레(이태리어): '보듬어 주고 활력과 영감을 불어넣는 자'를 의미합니다.
에페소 공의회(431년)에서 하느님의 어머니로 선포한 성모님을 ‘평화의 모후’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모후’(찬미받으소서 241항)로 모시며 중동과 한반도의 평화 그리고 생태적 회심(인간영혼과 자연의 회복)을 지향하는 온라인 기도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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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바리사이가 아니라 이 세리가 의롭게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루카 18,14)
죄인임을 고백하게 하는 겸손
근엄한 바리사이는 교만하게 자기 자랑을 했을 뿐 아니라 하느님 앞에서 세리를 깎아내렸지요. 결국 그는 교만의 죄로 자신의 의로움을 하찮은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반면 거룩하신 하느님께 영광을 돌린 세리는 의롭게 되어 집으로 돌아갔지요. 그는 눈을 들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자비를 간청하기만 했습니다. 그는 태도로, 가슴을 치는 몸짓으로, 자비만을 구하는 간청으로 스스로를 고발했습니다. 그러니 교만으로 망해 버린 바리사이를 교훈 삼아, 그런 일이 없도록 조심하십시오. 거만한 몸짓은 의로움을 앗아 가고, 건방진 자기 자랑은 그가 받을 상을 앗아 갔습니다. 하느님께서 판결을 내리시기도 전에 자기를 치켜세우며 스스로 판결을 내리다가 비천한 죄인보다 더 못한 자로 심판받았지요. 결코 그대를 다른 사람 앞에, 그가 아무리 나쁜 죄인이라 해도, 내세우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겸손은 아주 무서운 죄를 지은 죄인도 구원합니다.
-대 바실리우스-


마이스터 엑카르트는 이렇게 말했다(대지를 품어 안은 엑카르트 영성) / 매튜 폭스 해제 · 주석
【둘째 오솔길】
버림과 그대로 둠
설교 17
지성을 버리고 순수한 무지를 경험하라
예수가 열두 살 되던 해에도...(루카 2,42).
이제 여러분은 이렇게 물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처럼 진보한 상태에 있는 사람들도 참회를 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들이 참회를 하지 않는다면 게으름의 죄를 짓는 게 아닐까요?’ 여러분, 잘 들으시기 바랍니다! 단식이든, 밤을 새우는 것이든, 기도하는 것이든, 무릎을 꿇는 것이든, 고행을 하는 것이든, 두건을 머리에 쓰는 것이든, 딱딱한 잠자리에 드는 것이든, 혹은 이와 유사한 것이든 간에, 모든 유형의 참회는 우리의 몸과 육체가 끊임없이 영을 거스르기 때문에 고안된 것입나다. 육체는 영에 비해 너무 강합니다. 그래서 육체와 영 사이에는 다툼이 끊이지 않습니다 그 다툼은 영원한 다툼입니다. 여기 이 세상에서 육체는 대담하고 강합니다. 그 이유는 육체의 고향이 이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은 육체를 편듭니다.
이 세상은 육체의 조국이고, 육체의 친척인 음식과 음료와 양생 역시 육체를 편듭니다. 이 모든 것이 영을 거스릅니다. 영에게 이 세상은 낯선 곳입니다. 영의 친척과 가족은 모두 천상에 있기 때문입니다. 영이 천상을 향해 돌아서서 그곳을 본향으로 삼기만 한다면 많은 동무를 사귀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육체에다 참회의 고베를 씌우는 것은 낯선 땅에서 영을 돕고, 이 싸움에서 어느 정도 육체를 약화시키기 위해서입니다.(360)


<금주간 성서 읽기> 마태 27-28장 / 사도 1장
<생태 영성 주간> 고요와 침묵과 절식을 통한 단순한 삶


하느님 신앙과 원불교의 일원상
19세기 한민족의 위기 의식과 종교적 각성은 동학(천도교)의 창건이라는 역사적 사건만이 아니라, 한국 종교사에서 또 하나의 놀라운 창조적 사건, 곧 불교의 한국적 토착화라는 결실로서 원불교라 부르는 민족적 세계 종교의 출현을 보게 만들었다.
현재 한국 종교계에서 교단의 규모와 교세는 전통 불교나 그리스도교의 그것에 미치지 못하지만, 포교 사업, 교육 사업 , 병원 의료 사업 , 각종 구제 복지 사업 , 열린 방송 매체를 통한 문화 사업 , 그리고 종교 간의 대화 운동에 있어서 놀라운 역동성과 ‘작지만 참신한 종묘 로서 주목을 받는 종단이 원불교이다. 여기에서는 원불교의 중심 종지인 일원상(一圓相) 진리의 조명을 통하여 한민족의 하느님 신앙이 원불교의 일원상 진리 체험을 통하여 어떻게 드러나는가를 간략하게나마 고찰할 것이다.
원불교의 창시자 소태산(少太山) 박중빈(朴重彬, 1891一1943) 대종사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한민족의 국운이 위기에 처하고 민생이 도탄에 빠지며 세계 열강의 식민지 침탈로 뭇 생명들이 고난과 피폐함을 겪을 때 , 동시에 유불선 전통 종교와 동학 등 신흥 민족 종교, 그리고 기독교 같은 외래 종교가 세상 구제의 처방을 내리며 저마다 제 소리를 발할 때, 이 모든 다양한 사상과 종교의 중요 경전을 공부하고 몸소 구도자로서의 고행과 수행 끝에 일원상의 진리를 깨달아 새로운 진리 생명 운동을 일으켰다
종단의 이름이 시사하는 바처럼, 원불교는 불교, 유교, 선교, 천도교, 기독교 등 한민족에게 영 향을 끼친 중요 종교의 교리와 가르침을 존중하고, 그 핵심 진리를 포용적 자세로 대하되, 근본적으로 ‘불법(佛法)에 연원을 정함으로써 불교의 한국적 토착화를 이루는 동시에 불교 사상을 주체적으로 현대화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