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y 고인현 도미니코 신부 ofm
아니마또레(이태리어): '보듬어 주고 활력과 영감을 불어넣는 자'를 의미합니다.
에페소 공의회(431년)에서 하느님의 어머니로 선포한 성모님을 ‘평화의 모후’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모후’(찬미받으소서 241항)로 모시며 중동과 한반도의 평화 그리고 생태적 회심(인간영혼과 자연의 회복)을 지향하는 온라인 기도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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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은 타오르며 빛을 내는 등불이었다. 너희는 한때 그 빛 속에서 즐거움을 누리려고 하였다.(요한 5,35)
예언자들과 사도들은 하느님의 등불
모든 사람은 등불입니 다. 불이 켜질 수도 꺼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등불이 아닌 존재는 그리스도뿐입니다. “아버지께서 당신 안에 생명을 가지고 계신 것처럼, 이들도 그 안에 생명을 가지게 해 주셨기”에 그분은 켜지지도 꺼지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사도들도 등불입니다 그들은 진리의 빛에 의해 불붙여지고 사랑의 영으로 불타오르며 신적인 은총의 기름이 주어졌기에 감사를 올립니다 그들이 등불이 아니라면 주님께서 그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마태 5,14)라고 하셨을 리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라고 하신 다음 그들이 스스로를 이렇게 묘사된 빛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려 주십니다.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빛이 세상에 왔다."(요한 1,9).
-아우구스티누스-


마이스터 엑카르트는 이렇게 말했다(대지를 품어 안은 엑카르트 영성) / 매튜 폭스 해제 · 주석
【둘째 오솔길】
버림과 그대로 둠
설교 17
지성을 버리고 순수한 무지를 경험하라
예수가 열두 살 되던 해에도...(루카 2,42).
버리는 법과 그대로 두는 법을 익힌 사람의 내면에 남아 있는 것에 이름을 붙이기 위해, 엑카르트는 생생한 구절을 제시한다. 그는 순수한 무가 되는 것에 대하여, 순수한 무지를 경험하는 것에 대하여,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는 무지의 지식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이처럼 순수한 무로 들어가는 킬은 어둠 속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하느님이 우리를 위해 준비하는 동안, 우리는 텅 빔과 독거와 광야에서 입을 다물고 잠잠히 있어야 한다. 우리는 하느님이 준비하는 만큼 준비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우리가 그 무엇에도 방해를 받지 않는 무애(無碍)의 상태에 있음을 보자마자, 하느님은 우리에게 큰 복을 부어 넣을 것이다. 하느님은 이렇게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분은 새로운 아이 안에다 영혼을 주입한다. 합일은 상호 작용으로 이루어진다: 우리는 문을 활짝 열고, 하느님은 안으로 들어온다. 문을 여는 행위와 안으로 들어오는 행위는 같은 행위다. 문을 여는 행위와 안으로 들어오는 행위는 같은 찰나에 이루어진다.(3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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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간 성서 읽기> 요한 1서 전체
<생태 회심 주간> 생태적 묵상


하느님의 성인은 부제(副察)였으므로 부제복을 차려입고 거룩한 복음을 낭랑한 목소리로 노래하였다. 그의 목소리는 우렁차면서도 부드러웠고, 맑고 낭랑하였으며,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최고의 선물을 받게 했다. 그는 둘레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설교를 하였다. 그는 가난한 임금님의 탄생과 작은 마을 베들레햄에 관하여 재미나게 말을 하였다. 그는 그리스도 예수님을 부르고 싶을 때면 사랑에 불타서 그분을 “베들레헴의 아기”라고 부르곤 하였고, “베들레헴”이라는 말을 할 때의 그의 목소리는 마치 어린 양의 울음소리 같았다. 그의 입은 말로써 보다는 차라리 감미로운 사랑으로 채워져 있는 형편이었다. 그뿐 아니라 “베들레헴 아기”나 “예수”라는 말을 할 때, 그의 혀는 이 말의 감미로움에 입맛을 다시고 입술을 핥으며 맛과 향기를 맛보는 듯하였다. 전능하신 분의 은총이 그곳에 충만하였고, 그 자리에 있던 어떤 한 덕이 있는 사람들은 놀라운 환시를 보았다. 그는 어린 아기가 말구유에 생명없이 누워있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거룩한 하느님의 사람이 다가가서 마치 잠에서 깨어나게 하듯 그 아기를 소생시키는 것을 보았던 것이다.
“형제여, 우리를 위하여 아기 예수께서 태어나신 이 날을 단식일이라고 하면 그것은 죄악입니다! 내 생각은 이렇습니다. 이 날은 담벼락까지도 고기를 먹여야 합니다. 그런데 먹일 수가 없으니, 그 곁에다가 고기를 문지르기라도 해야 합니다"
이 날에 프란치스코는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들과 굶주린 사람들의 배를 채워 주기를 바랐고, 소나 당나귀까지도 평상시보다 더 많은 양의 여물을 주게 하였다. 그가 말하였다. “내가 황제께 말만 할 수 있다면, 그에게 이야기해서 포고를 이렇게 내리라고 하겠소. 모든 사람이 밀과 곡식을 길에다 뿌려서 새들도 이렇게 성대한 날은 실컷 먹게 하고 특히 나의 자매들인 종달새들이 실컷 먹을 수 있도록 하라고 말입니다”
-첼라노가 전하는 성 프란치스코의 생애 중에서-
성 프란치스코와 함께 지나며 여러 가지 일을 기록하고 있는 우리는 그가 다음과 같은 말을 자주 하는 것을 들어왔다. “내가 국왕에게 할 수만 있다면 하느님과 나의 사랑으로 그에게 우리의 자매인 종달새를 죽이거나 해를 끼치지 못하도록 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것을 요청할 것입니다. 시장과 성주, 촌장들이 매년 주님의 탄생일에 그들의 백성들이 길에나 마을 변두리에 밀과 다른 곡식을 뿌리도록 시켜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 자매인 종달새와 다른 새들이 그러한 축제에 음식을 얻어 먹을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복되신 동정 마리아와 함께 그날 밤 소와 당나귀 사이에서 누워 쉬시는 성자를 흠숭하면서 소와 당나귀를 기르는 사람이면, 누구나가 크리스마스 전야에는 특별한 사료를 주어야 할 것입니다. 또한 크리스마스에는 부유한 사람들과 가난한 사람들과 서로 푸짐하게 나누어야 할 것입니다.”
-완덕의 거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