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민족이 멸망하는 것보다 한 사람이 죽는 것이 낫다.”
이 말은 대사제 카야파의 말입니다.
요한복음 저자는 이 말을 한 의미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얘기합니다.
“이 말은 카야파가 자기 생각으로 한 것이 아니라
그해의 대사제로서 예언한 셈이다.”
그의 인간적인 속셈은 예수님을 희생양 삼아
이스라엘을 로마로부터 구해내려는 것이었지만
하느님의 뜻은 이스라엘을 영적으로 구원하고
이스라엘뿐 아니라 흩어져 있는 온 백성을 영적으로 구원하는 겁니다.
그런데 카야파는 대사제로서 이것을 예언한 셈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은 이렇게 인간적인 계획을 구원을 위해 이용하시고,
매우 세속적인 사람도 당신 구원의 도구로 이용하십니다.
제가 북한과 평화 봉사소 문제로 벼랑 끝 대치를 할 때입니다.
저와 우리 형제 하나를 평양에 상주시키기 위해 줄다리기를 하는데
계약서에 저는 “상주”라는 말을 넣어야 한다고 했고,
북한은 종교인이 북한에 상주하는 것은 절대 안 된다고 하였습니다.
제가 끝까지 버팅기니 나중에 “상주”는 안 되고
“체류”라는 말로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 타협안을 받아들였습니다.
제일 중요한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안심하였는데,
그 시설의 명칭 때문에 문제가 다시 불거졌습니다.
저는 그 시설의 이름을 “평화의 집”이라고 지으려고 하였습니다.
프란치스코가 평화의 사도였고,
어디를 가든지 “평화와 선”을 인사하라고 하였기에
남북의 평화와 화해를 위한 교두보로서 “평화의 집”이라고 지은 거지요.
그런데 별 문제 없을 것 같은 이름을 가지고 안 된다는 거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제시하는 이름을 보니
그저 “복지관”이니 “후생관”이니 종교적 가치를 드러내지 않는,
그런 이름들을 제시하는 거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더더욱 안 된다고 버텼습니다.
제가 끝까지 버티니 그럼 그만 두자고 하는 거였습니다.
그래서 저도 정말 끝장이라고 생각하고
그때까지 후원 받은 것까지 돌려주고 모든 것을 정리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보름이 지난 뒤에 다시 연락이 왔습니다.
“평화의 집”은 안 되고 “평화 봉사소”라고 하면 어떻겠냐는 거였습니다.
눈 가리고 야옹이지요.
한 번 안 된다고 한 자존심 때문에 그러는 것을 알고는
제가 이 타협안을 받아들여 “평화 봉사소”라는 이름이 되었습니다.
나중에 들은 얘긴데 “평화 봉사소”라는 이름을 제시하며
파국으로 끝날 것을 되살린 사람은 북한의 고위직이었다는 거였습니다.
그때 저는 망치로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습니다.
저는 저만 하느님 사업의 도구고 북쪽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하느님은 그들도 당신의 사업의 도구로 쓰셨습니다.
그때 이후로 저는 북한 사업을 하면서
북쪽 사람들을 진정으로 존중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벼랑 끝 전술에 저도 벼랑 끝 전술로 버틸 때도 있지만....
아드님 한 분 희생으로 인류를 구하시는 하느님은
진정 악을 통해서도 선을 이루고
인간적인 계획을 통해서도 당신 구원을 이루십니다.
이 말은 대사제 카야파의 말입니다.
요한복음 저자는 이 말을 한 의미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얘기합니다.
“이 말은 카야파가 자기 생각으로 한 것이 아니라
그해의 대사제로서 예언한 셈이다.”
그의 인간적인 속셈은 예수님을 희생양 삼아
이스라엘을 로마로부터 구해내려는 것이었지만
하느님의 뜻은 이스라엘을 영적으로 구원하고
이스라엘뿐 아니라 흩어져 있는 온 백성을 영적으로 구원하는 겁니다.
그런데 카야파는 대사제로서 이것을 예언한 셈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은 이렇게 인간적인 계획을 구원을 위해 이용하시고,
매우 세속적인 사람도 당신 구원의 도구로 이용하십니다.
제가 북한과 평화 봉사소 문제로 벼랑 끝 대치를 할 때입니다.
저와 우리 형제 하나를 평양에 상주시키기 위해 줄다리기를 하는데
계약서에 저는 “상주”라는 말을 넣어야 한다고 했고,
북한은 종교인이 북한에 상주하는 것은 절대 안 된다고 하였습니다.
제가 끝까지 버팅기니 나중에 “상주”는 안 되고
“체류”라는 말로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 타협안을 받아들였습니다.
제일 중요한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안심하였는데,
그 시설의 명칭 때문에 문제가 다시 불거졌습니다.
저는 그 시설의 이름을 “평화의 집”이라고 지으려고 하였습니다.
프란치스코가 평화의 사도였고,
어디를 가든지 “평화와 선”을 인사하라고 하였기에
남북의 평화와 화해를 위한 교두보로서 “평화의 집”이라고 지은 거지요.
그런데 별 문제 없을 것 같은 이름을 가지고 안 된다는 거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제시하는 이름을 보니
그저 “복지관”이니 “후생관”이니 종교적 가치를 드러내지 않는,
그런 이름들을 제시하는 거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더더욱 안 된다고 버텼습니다.
제가 끝까지 버티니 그럼 그만 두자고 하는 거였습니다.
그래서 저도 정말 끝장이라고 생각하고
그때까지 후원 받은 것까지 돌려주고 모든 것을 정리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보름이 지난 뒤에 다시 연락이 왔습니다.
“평화의 집”은 안 되고 “평화 봉사소”라고 하면 어떻겠냐는 거였습니다.
눈 가리고 야옹이지요.
한 번 안 된다고 한 자존심 때문에 그러는 것을 알고는
제가 이 타협안을 받아들여 “평화 봉사소”라는 이름이 되었습니다.
나중에 들은 얘긴데 “평화 봉사소”라는 이름을 제시하며
파국으로 끝날 것을 되살린 사람은 북한의 고위직이었다는 거였습니다.
그때 저는 망치로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습니다.
저는 저만 하느님 사업의 도구고 북쪽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하느님은 그들도 당신의 사업의 도구로 쓰셨습니다.
그때 이후로 저는 북한 사업을 하면서
북쪽 사람들을 진정으로 존중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벼랑 끝 전술에 저도 벼랑 끝 전술로 버틸 때도 있지만....
아드님 한 분 희생으로 인류를 구하시는 하느님은
진정 악을 통해서도 선을 이루고
인간적인 계획을 통해서도 당신 구원을 이루십니다.
하느님 아버지께로 모아 들이시는 주님께 영광드립니다.
온 우주 만물들이,
만 가지 일을 통하여,
하느님 당신을 찬미하나이다.
하느님 찬미 받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