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y 고인현 도미니코 신부 ofm
아니마또레(이태리어): '보듬어 주고 활력과 영감을 불어넣는 자'를 의미합니다.
에페소 공의회(431년)에서 하느님의 어머니로 선포한 성모님을 ‘평화의 모후’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모후’(찬미받으소서 241항)로 모시며 중동과 한반도의 평화 그리고 생태적 회심(인간영혼과 자연의 회복)을 지향하는 온라인 기도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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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인들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이제 우리는 당신이 마귀 들렸다는 것을 알았소. 아브라함도 죽고 예언자들도 그러하였는데, 당신은 ‘내 말을 지키는 이는 영원히 죽음을 맛보지 않을 것이다.’ 하고 말하고 있소.(요한 8,52)
마지막 원수인 죽음
죄로 말미암아 세상에 생겨난 죽음이란 무엇입니까? 장차 파멸할, 그리스도의 마지막 원수 아니겠습니까? 모두가 죄를 지어 모든 인간에게 전해진 죽음은 무엇입니까? 아담으로부터 모세에 이르기까지 인간을 지배한 이 죽음 아닙니까? 모세, 곧 율법은 우리 주 예수님께서 오실 때까지 계속되었고, 풍성한 은총과 의로움을 받아들인 사람들이 한 분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 생명 안에서 다스릴 때까지, 한 사람을 통하여 한 사람의 죄를 가지고 다스렸습니다(로마5,17 참조). 그렇다면 외아들이며 “모든 피조물의 맏이"(콜로 1,15)이신 분의 말씀을 지키는 이는 누구든지 이 죽음을 보지 않을 것입니다. 죽음이 보이지 않도록 막는 것이 ‘말씀’의 본성이기 때문입니다 “내 말을 지키는 이는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않을 것이다”라는 말씀은 이렇게 이해해야 합니다. 이 말씀을 듣는 이들에게 선물로 빛을 주시며 나의 이 빛을 꺼뜨리지 않고 지키는 이는 결코 어둠을 보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시는 것 같은 말씀입니다.
-오리게네스-


마이스터 엑카르트는 이렇게 말했다(대지를 품어 안은 엑카르트 영성) / 매튜 폭스 해제 · 주석
【둘째 오솔길】
버림과 그대로 둠
설교 17
지성을 버리고 순수한 무지를 경험하라
예수가 열두 살 되던 해에도...(루카 2,42).
전에는 여러분에게 걸림돌로 작용하던 것이 이제는 여러분에게 이로움으로 작용합니다. 여러분의 얼굴은 완전히 이 탄생을 향해 돌아설 것입니다. 실로 여러분이 보거나 듣는 것이 무엇이건 간에, 여러분은 만물 속에서 이 탄생만을 받아들일 것입니다. 실로, 모든 것이 여러분에게 하느님이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은 모든 것 속에서 하느님만을 볼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하느님이 될 것이다 - 이것이야말로 엑카르트가 말하는 복의 영성의 첫 번째 원리이다. 말하자면 존재가 하느님이라는 것이다. 참으로 우리는 우리의 근원으로 되돌아갔다가 거기에서 다시 나올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순수한 무로 들어감으로써 모든 존재가 신성하다고 하는 진리를 이전보다 더 깊이 깨닫기 때문이다. 엑카르트에게 부정의 길은 공정의 길과 변증법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둘째 오솔길은 첫째 오솔길에서 나와서 다시 첫째 오솔길로 돌아간다.
엑카르트가 본 설교에서 제기하는 또 다른 쟁점은 고행의 문제이다. 단식. 철야, 무릎 꿇기, 기도, 두건 쓰기 등은 얼마나 중요한가? 그것들은 이러한 무지의 지식으로 들어가는 데 얼마나 유익한가? 그것들은 사랑이라는 이름의 굴레보다 훨씬 덜 유익하다.
육체에다 참회의 고삐를 씌워 육체를 속박하고, 육체에다 짐을 지워 육체를 복종시키기를 원하거돈 육체에다 사랑의 재갈을 물리십시오. 여러분은 사랑을 통해서 육체를 가장 빨리 정복하고, 육체에다 가장 무거운 짐을 지울 수 있을 것입니다.(367)


<금주간 성서읽기> 사도 2장-6장
<생태 돌봄 주간> 자신. 이웃. 동물과 식물. 자연환경


<파티마의 성모 마리아와 목동 / 세 바르따스>
제 6장 오직 하느님만을
드디어 한 분의 주교가
1917년 호랑가시나무 그늘에서 로사리오를 드린 사람은 세 명의 어린이였다. 그런데 히야친따의 영혼이 하늘 저 피안으로 떠난 후 이승에 남게된 아이는 작은 무리를 지휘하던 루치아 혼자뿐이었다.
처음 발현 3주년 기념 축전에 정부가 군대까지 파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포르투갈 전국민은 발길을 그곳으로 향해 달렸었다. 그때에도 고바다 이리아에는 오직 홀로 루치아뿐이었다 (1920년 5월 13일) .
하느님은 루치아를 이 지상에 혼자 남겨 둠으로 해서--현재에도 생존해 있음--민중 특히 교회 당국에게 그녀가 보고 들은 것의 증언이 되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레이리아 교구는 1918년부터 교회법에 준하여 부흥되었는데 4전 포르투갈 신학교 교수 호세 일베스 골레이아 다 실바 신부가 주교의 임명을 띠고 부임한 것은 1920년이었다.
새 주교는 1872년생으로 그 당시 48세이며, 그리스도교 사회 운동가로 이미 그 명성이 높은 분이었으며 여러 가지 가톨릭 신문에도 협력하고 있었다.
그리고 주교는 그 만난 사람이면 평신도이거나 사제이거나를 막론하고 초면부터 신뢰할 수 있는 지도자를 만나게 되었다는 느낌을 품게 되는 그런 분이었다.
그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교구 신자들은 사랑과 존경을 다하면서 주교의 사목하에 즐겨 봉사하고 있다.(1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