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제자의 혀를 주시어 지친 이를 말로 격려할 줄
알게 하시고, 내 귀를 일깨워 주시어 내가 제자들처럼 듣게 하신다.
나는 모욕과 수모를 받지 않으려고 내 얼굴을 가리지도 않았다.
그러나 주 하느님께서 나를 도와주시니 나는 수치를 당하지 않는다.”
어제는 말귀를 못 알아듣는 제자에 관해 얘기했는데
오늘 이사야서는 제자의 혀와 귀에 관해 얘기합니다.
그런데 먼저 제자의 귀에 관해 얘기하려고 합니다.
들어야 말을 하고 듣는 것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제자의 귀는 복음의 제자들과 달리 하느님 말귀를 알아들을 수 있는데
이사야서가 말하는 주님의 종이 바로 복음의 예수님이고,
예수님이야말로 진정한 주님의 종이요 제자의 귀를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종은 주님의 말만 알아들을 수 있는 말귀를 가진 사람입니다.
주님이 아닌 다른 자들의 말을 듣는 귀는 없는 사람이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인간이 퍼부어대는 모욕과 수치의 말은 아무리 퍼부어대도 모욕당하지 않고
수치를 당하지 않는다고 오늘 ‘주님의 종의 세 번째 노래’는 노래합니다.
“주 하느님께서 내 귀를 열어주시니
모욕과 수모를 받지 않으려고 내 얼굴을 가리지도 않았다.
그러나 주 하느님께서 나를 도와주시니 나는 수치를 당하지 않는다.”
우리도 이런 편리한 귀와 현명한 귀를 가져야 합니다.
쓸데없는 인간의 말과 욕이나 모욕의 말은 자동 차단하고
생명을 주는 쓸 데 있는 주님의 말씀만 허용하는 귀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 가운데는 아주 멍청한 귀를 가진 사람이 많습니다.
얼마나 멍청한지 하느님 말씀은 듣지 않고 유튜브에 귀가 점령당하여,
쓸데없는 소리만 듣고 들을 필요가 없는 모욕의 말은 소리를 키워 잘도 듣습니다.
다음으로 제자의 혀에 관해 얘기하겠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제자의 귀를 가진 사람이 제자의 혀도 가집니다.
제자란 스승에게서 들은 것을 말하는 사람이니
제자의 귀를 가져야 제자의 혀로 말하겠지요.
오늘 이사야서에서 주님의 종은 지친 이를 말로 격려할 줄 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말이 제게는 이렇게 들립니다.
주님의 종은 지친 이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데 지치지 않는다.
하느님으로부터 끊임없이 위로와 격려를 받는 사람은
끊이지 않는 물줄기를 가진 샘처럼 샘이 마르지 않아
아무리 위로와 격려를 해도 지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끊임없이 기도하는 사람이 바로 이런 사람일 것입니다.
사랑과 위로와 격려를 하느님으로부터 받는 기도,
이런 기도를 잘하는 사람은 끊이지 않는 사랑의 샘을 가진 사람이고,
지친 이를 지치지 않고 위로와 격려를 할 수 있음을 묵상하는 오늘 우리입니다.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