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들의 공동체는 한마음 한뜻이 되어
아무도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 하지 않고
공동으로 소유하였다. 모두 큰 은총을 누렸다.”
오늘 사도행전은 유의미한 말을 전해줍니다.
자기 소유를 자기 것으로 하지 않음에 관해.
우리는 가난과 관련하여 아예 소유 자체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프란치스코를 따르는 사람은 더더욱 그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래야 하고 많이 소유하지 않음이 필요하고 중요하기에
주님께서도 재물이 있는 곳에 너희 마음이 있다고 말씀하셨지요.
그렇지만 소유 자체가 문제이고 죄인 것은 아닙니다.
어떻게 아무것도 없이 살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필요한 것을 소유하되 자기 것으로 소유치 않는 것이 중요하고,
소유욕 없이 소유하는 것 또는 소유욕이 없기에 가난한 것이 중요합니다.
하느님 것인데 하느님께서 주셔서 내가 소유하게 된 것,
곧 하느님이 거저 주시는 은총을 누리는 것이 가난이고,
이럴 때 오늘 “모두 큰 은총을 누렸다.”라고 하듯
하느님 것이 다 내 것이고 내 것이 다 하느님 것입니다.
이것이 프란치스코가 얘기하는 소유 없이(Sine Proprio) 소유하는 것인데
프란치스코는 이것을 이렇게도 얘기합니다.
“형제들은 아무것도 자기 것으로 소유하지 말 것입니다.”
그런데 좀 더 정교하게 얘기하면
무엇을 내 것으로 소유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내 것으로 소유하려고 하는 마음 곧 욕심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프란치스코는 자기 의지도 자기 것으로 하지 말라고 하고,
자기 의지를 자기 것으로 하는 것 또는 하려는 것을 악이라 합니다.
이렇게 자기 의지를 자기 것으로 소유하지 않을 때
오늘 사도행전이 얘기하듯 공동체가 한마음 한뜻이 될 수 있습니다.
유심히 보셨는지 모르지만
사도행전은 한마음을 무척 강조하여 요 며칠 한마음의 사도들을 봤습니다.
어제는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동료들은 그 말을 듣고 한마음으로 목소리를 높여 하느님께 아뢰었다.”
그제는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한마음으로 솔로몬 주랑에 모이곤 하였다.”
그러나 한마음은 참 아름답지만 그렇게 되기는 참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한마음이 되기 위해서는 앞서 봤듯이
자기 것 특히 자기 의지를 자기 것으로 소유하지 말아야 하고,
무엇보다도 모두 성령에 이끌리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포기해야 할까요?
하나를 이루려는 마음과
하나를 이루시는 성령이
같이 작용하는 공동체를 꿈꾸는 것은 꿈쟁이들에게나 가능한 것일까요?
이런 꿈쟁이가 되는 것은 허무맹랑한 것일까요?
우리가 허무맹랑한 꿈쟁이가 되면 안 될까요?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