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사람들에게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옛사람에게 이르신 말씀들은 이러합니다.
‘살인해서는 안 된다. 살인한 자는 재판에 넘겨진다.’
‘간음해서는 안 된다.’
‘자기 아내를 버리는 자는 그 여자에게 이혼장을 써 주어라.’
‘거짓 맹세를 해서는 안 된다. 네가 맹세한 대로 주님께 해 드려라.’
옛사람에게 이르신 말씀들은 최소한이고 소극적입니다.
이에 주님께서는 새로운 가르침을 주시는데
더 완벽한 계명의 실천을 요구하시는 겁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계명과 율법을 폐지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오신 것이고, 더 완전하게 실천케 하려고 오신 것이지요.
우리는 자주 주님의 사랑 때문에 착각을 하고 오해를 합니다.
죄인을 용서하시는 사랑을 죄를 용서하시는 거로 오해를 하고,
죄인도 회개할 때, 그리고 용서를 청할 때 용서하시는 것인데
바리사이나 율법학자들처럼 회개할 마음이 전혀 없는 죄인도,
용서를 청하지 않는 죄인도 주님은 용서하신다고 착각을 합니다.
실제로 고백성사를 주다보면
사람에 따라 죄에 대한 인식에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판공성사 때 가끔 이런 분을 만나게 되는데,
성사를 보러 들어와서는 죄 없다고 하면서 사해 달라고 합니다.
죄가 없는데 제가 어찌 죄를 사해줄 것이며,
죄가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마는
얘기를 들어보면 주일미사 한 번도 빠진 적이 없으니 죄가 없고,
살인죄나 사기죄, 횡령죄와 같이 큰 죄를 짓지 않았으니 죄 없다는 겁니다.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분은 세심증 환자로서 죄가 아닌 것까지 죄책감을 가집니다.
이럴 경우 마치 법정에서마냥 죄가 있느니, 없느니 따지고,
그것은 죄이니, 아니니 따지게 될 수도 있는데
이런 것은 오늘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진정 아닐 겁니다.
인간은 누구나 큰 죄건 작은 죄건 죄를 지었기에 주님의 관심사는
법정에서처럼 죄의 유무와 죄의 크고 작음을 가리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진정 바라시는 것은 죄에서 해방되고
하느님과 이웃을 참으로 사랑하고 더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 죄냐 작은 죄냐를 따지기보다 죄를 짓지 않기를 주님은 바라시고,
죄를 짓지 않기를 바라시기보다 더 사랑하기를 바라십니다.
이런 주님의 뜻을 안다면
더 사랑할수록 작은 죄도 마음 아파할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 주님 말씀처럼 살인이 아니라 성만 내도 마음이 아프고,
간음이 아니라 음욕이 생긴 것만으로도 사람을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욕망의 대상으로 만들었음에 마음 아파할 것입니다.
하느님이든 이웃이든, 심지어 자기 자신이들 사랑을 하는 사람은
사랑을 하면 할수록 살인은 말할 것도 없고 조금 성을 내고도,
마음 아픈 소리를 조금 하고도 자기가 더 마음 아파할 것입니다.
아내를 진정 사랑한다면 다른 여자와 간음을 하기는커녕
다른 여자를 보고 예쁘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죄책감을 느낄 겁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계명이나 율법을 완성하신다는 것은
계명을 더 철저하고 완전하게 지킨다는 뜻일 뿐 아니라
사랑으로 계명을 완성하신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죄를 안 지으려고 애쓰는 그 노력으로
사랑을 더 많이 그리고 뜨겁게 하도록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