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람의 증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주님께서는 진정 사람의 증언을 필요로 하지 않으신가?
우리는 주님에 대해 증언을 하지 않아도 되는가?
사람의 증언을 필요치 않다는 말씀은 사람의 증언을 무시하시는 것인가?
주님께서는 당신을 증언한 세례자 요한의 증언을 언급한 다음
“그러나 나에게는 요한의 증언보다 더 큰 증언이 있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 앞에서는 “나는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는 그분의 증언이
유효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말씀도 하십니다.
그러니까 사람의 증언이 필요 없다는 말씀은 주님께 대한
더 유효하고 더 큰 증언이 있기에 필요 없다는 뜻이며
아버지 하느님의 증언이야말로 사람의 증언보다 유효한 증언이고,
당신께서 하시는 일들이야말로 사람의 증언보다 큰 증언이라는 뜻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면 살아갈수록
자기의 말은 말할 것도 없고 다른 사람의 말일지라도
말은 자기에 대한 진정한 증언이 못 된다는 것을 절실히 느낍니다.
그런데 그것이 다른 것도 아니고
자신이 하느님의 사람이라는 것을 증언하는 거라면
더더욱 말로써 증언해서는 그 증언에 힘이 없습니다.
제일 부러운 것은 가만히 있어도 그의 얼굴이 천국을 얘기하고,
아무 것 아니 해도 그의 풍기는 향기가 천국을 얘기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더하여 하는 일도 정말로 하느님의 일이라면
그가 하느님의 사람이라는 것은 더 이상 말로 증언할 필요가 없고,
필요 없는 정도가 아니라 말이 오히려 증언의 가치를 떨어트립니다.
말이 필요 없다는 말이 바로 이런 것이지요.
사람일지라도 하느님의 사람이면 이렇게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존재와 행위가 자신을 증언 하는데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주님은 더더욱 말이 필요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유다인들은 이런 주님을 몰라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너희는”이라는 말로 많은 말씀을 하시는데,
그런데 모든 말씀이 다 “없다”, “않는다.”는 부정어들뿐입니다.
너희는 그분의 말씀을 들은 적도 없고, 모습을 본 적도 없다.
너희는 그분의 말씀이 머무르게 하지 않는다.
너희는 하느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지 않는다.
너희에게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
너희는 생명을 얻으려 하지 않는다.
너희는 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주님께서는 이런 부정적인 사람의 증언을 필요로 하지 않고,
이런 부정적인 사람은 주님을 증언할 수도 없습니다.
긍정의 하느님을 부정의 사람이 어찌 증언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사람의 증언이 필요치 않다는 주님의 말씀은
성부와 당신의 행적이 더 효과적이고 더 큰 증언이라는 뜻도 되지만
이런 부정의 사람은 하느님의 증언을 대신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저를 돌아봅니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긍정의 사람인가, 부정의 사람인가?
주님께서 필요로 하시는 사람인가, 필요 없다고 하시는 사람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