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요한 20, 22-23)
오늘 이 이야기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그날 저녁의 이야기입니다. 스승의 죽음으로 인한 두려움, 자신들도 잡혀가서 죽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제자들은 감히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말씀하십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20,19)
그 말씀과 함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으로 파견하십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20,21)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숨어 있는 제자들이, 당신의 부활이 가져오는 평화로 두려움을 극복 할 수 있도록, 평화를 선물로 주십니다. 그리고 이어서 성령을 받을 것을 말씀하십니다.
"성령을 받아라."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성령을 받을 것을 말씀하시면서, 용서를 함께 언급하십니다. 사도 바오로가 2독서에서 이야기 하는 것처럼 성령의 은사는 여러 가지이지만(1코린 12,4),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성령을 통한 용서 만을 언급하십니다.
1독서, 사도행전에서는 제자들이 성령을 받는 모습이 나타납니다. 성령을 받은 제자들의 말을 여러 나라 사람들이 알아듣고 놀라워하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또한 2독서, 코린토서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는 '하나', '같음'입니다. 다름 속에서, 다양성 속에서도 같은 하느님, 같은 주님, 같은 성령이 활동하시며, 그것을 통해서 우리는 한 몸이 됨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즉 오늘의 두 독서는 하나같이 '일치'를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일치와 용서.
모든 사람은 같지 않습니다. 즉 모든 사람은 다릅니다. 하지만 그 다름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내가 생각하고, 내가 살아가는 방식과 다르기에, 다름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부가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다름의 차이가 클수록, 우리에게 필요한 노력은 더 클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에 비슷한 사람들끼리는 어울리기 쉬워도, 많은 차이가 나는 사람고하는 쉽게 가까이 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한 어려움은, 내 것이 옳고, 네 것이 옳지 않다는 생각, 즉 틀리다는 생각으로 더 커집니다. 사람들은 같지 않음을 다름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틀림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틀림이라는 생각은, 그 잘못됨을 고쳐주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옮겨가고, 그 과정 중에서 힘이 들어가게 됩니다. 내가 생각하기에 잘못된 것이지만, 상대방이 생각하기에는 잘못된 것이 아니기에, 내가 아무리 잘못되었다고 이야기를 해도, 상대방은 쉽게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하지만 내 욕심은 상대방이 내 생각을 받아들이기를 요구하고, 그 욕심을 채우려 우리는 종종 폭력을 사용하게 됩니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잘못을 고쳐주는 것이 너를 위한 나의 배려, 나의 사랑이라고 생각할 때, 그 폭력을 종종 정당화시키기도 합니다.
프란치스코의 생애 말기에, 프란치스코가 병으로 누워 있을 때, 아시시의 주교와 시장이 서로를 미워하고 싸우는 일이 벌어지게 됩니다. 프란치스코는 형제들에게 그들 앞에서 가서 '태양 형제의 노래'를 부르게 했는데, 그 때 '용서'에 대한 구절이 첨가됩니다.
'내 주님, 당신 사랑 까닭에 용서하며,
병약함과 시련을 견디어 내는 이들을 통하여 찬미받으시옵소서.
평화 안에서 이를 견디는 이들은 복되오니,
지극히 높으신 이여, 당신께 왕관을 받으리로소이다.'
(태양 형제의 노래/피조물의 노래, 23-26)
서로 같지 않은 우리가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아니 다름을 가지고 살아가는 우리가 서로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서로의 다름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다름을 미워하기 보다는, 미운 상대방을 용서할 때, 우리는 서로의 다름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분노해야 할 정당한 상황, 미워해야 할 정당한 상황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나에게 피해를 준 사람, 나의 가족을 해친 사람을 용서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 우리가 그들을 용서한다면, 우리는 그들과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 됨 속에 일치를 이루시는 성령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그 안에서 성령께서 주시는 은사를 받아,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