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가다가 우연히 한 사람을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첫 눈에 반했다는 표현이 딱 들어맞을 정도로 마음에 쏙 들었습니다. 그는 그 여자의 사랑을 얻기 위해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을 것처럼 행동하게 됩니다. 그 동안 아껴왔던 돈도, 그 여자를 위한 선물을 사기 위해서는 아깝지 않습니다. 그 여자를 생각하다 보면, 다른 것을 생각할 마음의 여유가 없고, 그 여자를 만나러 가는 길이 아무리 멀어도, 한 걸음에 달려갈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의 주인공은 보물 혹은 진주를 발견합니다. 그것은 그에게 매우 값진 것으로 생각되었고, 그렇기에 지금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다 팔아도,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을 모두 잃는다고 해도, 그것을 얻을 수만 있다면, 그 상실은 문제되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 사람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휴일에 잠 잘 시간을 포기하고, 내가 갖고 싶은 것을 살 돈으로 상대를 위한 선물을 사도, 그 상실은 전혀 문제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그렇게 하고 싶습니다. 친구가 만나자고 하면 시간이 없지만, 그녀가 만나자고 하면 없던 시간도 생깁니다. 그렇다면 친구와 애인의 다른 점은 무엇일까요?
사람은 선택에 있어서 더 좋은 것을 향합니다. 더 좋은 것을 잡기 위해서, 덜 좋은 것은 놓을 수 있습니다. 휴일에 잠을 자는 것도 좋지만, 그녀를 만나는 것은 더 좋기에, 덜 좋은 것을 포기하고, 더 좋은 것을 얻기 위해서, 잠을 포기하고 만나러 나갑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하늘나라는, 그 어떤 것과 비교할 수 없는, 가장 좋은 그 무엇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가장 좋은 그 무엇을 얻기 위해, 수도자들은 가난을 선택하고, 정결을 선택하고, 순명을 선택합니다.
내 재산을 포기한다는 것, 결혼을 포기한다는 것, 내 의지를 포기한다는 것, 포기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굉장히 힘들고, 암울하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선택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더 좋은 것을 잡기 위해서, 덜 좋은 것을 놓는 것이라고 본다면, 그것만큼 인간적이고, 아니 가장 이기적인 것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문제는, 그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이며, 그 가장 좋은 것은 어디에서 어떻게 얻을 수 있는가입니다.
우리가 지금 생각하고 있는 가장 좋은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지금 무엇을 향해서 달려가고 있습니까? 우리가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면, 그 목표는 분명 우리가 생각하기에 좋은 것입니다. 가장 좋은 것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울지라도, 다른 것에 비해서는 조금은 더 좋은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정말 좋은 것입니까? 내 모든 것을 포기하면서 선택할 수 있을 정도로 좋은 것입니까? 우리는 가끔 다른 것을 보다가, 정작 보아야 할 것을 놓치고 있습니다. 맑은 하늘의 깨끗함, 아이들의 웃음소리, 가족들의 사랑. 기쁨이 있는 곳에, 행복이 있는 곳에, 사랑이 있는 곳에, 하늘나라가 있고, 그 안에서 하느님께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삶이 힘들지만, 한 가닥의 희망도 보이지 않지만, 그 안에 기쁨이 숨겨져 있고, 행복이 숨겨져 있으며, 사랑이 그 안에서 숨 쉬고 있습니다. 한 사람이 보물을 발견한 밭에서 다른 사람은 그 보물을 발견하지 못한 것처럼, 우리도 우리 안의 보물, 기쁨과 행복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모두 하늘나라라는 그물 속에 있지만, 그곳이 하늘나라임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누가 나를 밖으로 던져 버리기 전에, 내가 먼저 스스로 그물 밖으로 뛰쳐나갈 것입니다.
반면, 내가 살아가는 공간 안에서 기쁨, 행복, 사랑, 혹은 좋음을 발견한다면, 삶이 주는 힘겨움 속에서도, 희망을 갖고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형제, 자매님들이 생각하시는 하늘나라는 무엇이고, 지금 어디를 향해서 나아가고 계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