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는 열 두 제자를 불러 모으시어”
오늘 복음을 읽다가 여러 장면들이 상상이 되었습니다.
우선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불러 모으는 장면이 상상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모이라고 하시자 제자들은 웅성웅성합니다.
왜 모이라고 하시는 것이지?
우리에게만 따로 무슨 가르침을 주시려는 것인가?
지금까지와는 다른 무슨 새로운 도전을 주시려는 것인가?
맞습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을 불러 모으시는 느낌이 사뭇 다릅니다.
아니나 다를까 지금까지와는 달리 따로 파견을 하시겠답니다.
지금까지는 여기저기 돌아다니시기는 해도 제자들을 늘 곁에 두셨는데
이제는 각자 알아서 세상을 돌아다니라고 하십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는 곁에 두시고 파견을 위한 교육을 하셨는데
이제부터는 배운 대로 나가서 해보라는 것입니다.
10개월 간 수련소 안에서 교육을 시킨 저희 수련자들을
지난 여름 제가 세상 가운데로 파견했던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파견하시기 전
하느님 나라 선포와 질병 치유의 사명을 주시고
마귀 퇴치와 질병 치유를 위한 힘과 권한을 주십니다.
“모든 마귀를 쫓아내고 질병을 고치는 힘과 권한을 주셨다.
그리고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병자들을 고쳐 주라고 보내셨다.”
그러니까 오늘복음 바로 앞에서 게라사의 마귀를 쫓아내신 것과
야이로의 딸을 살리시고 하혈하는 부인을 치유하신 것은
모든 마귀를 쫓아내고 병자를 고쳐줘야 하는 제자들에게
해야 할 일을 솔선수범, 미리 시범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사실 병자들과 악령들과는 그 대면 자체로 두려운 것인데,
악령퇴치와 병자치유까지 한다는 것은 더더욱 두렵고 부담스럽습니다.
주님께서 행하시는 것을 아무리 옆에서 지켜봤다지만 자신이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그것을 행할 능력과 권한을 주시는데
제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주님께서 주신 능력에 대한 믿음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선뜻 하지 못함은 자신감이 없기 때문인데
자신감이란 자기를 믿는 것이니 이런 엄청난 일의 경우에는
더더욱 자신감이 없을 수밖에 없겠지요.
그래서 바오로 사도가 말씀하시듯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그런 자신감을 가져야만 합니다.
이것만으로도 제자들은 두렵고, 막막한데
그런데 주님께서는 한 술을 더 뜨십니다.
“길을 떠날 때에 아무 것도 가져가지 마라.”
이렇게 되면 억장이 무너져 아예 포기하게 되지 않을까요?
예, 주님께서 주신 능력과 권한에 대한 믿음 없이
인간적으로만 생각을 하고 판단을 한다면 그럴 겁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퇴로차단’, ‘배수의 진’ 치기입니다.
인간적인 도움이나 수단에 의지하려는 마음을 아예 차단하고,
주님께서 주신 능력과 권한에만 오로지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인간적인 도움이나 수단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우리는 하느님께 온전히 의지하기보다 그것들에 의존합니다.
저의 경우 무전 순례를 떠나면서 만 원을 가지고 떠난 적이 있는데
음식을 얻어먹기 힘들 때마다 그 돈으로 사먹을까 유혹을 받았지요.
그럴 경우 큰 결단으로 그것을 없애버린 다음에야
하느님께 오로지 의지할 수 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도 하느님 나라 순례의 길을 떠나는 것이니
하느님의 도움만 바라고 떠나고 다른 것은 의지하지 말라고 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