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사랑과 일
사랑과 일은 우리 인간 삶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요소이고,
심리학자들에 의하면 인간은 이 두 가지를 통하여 만족을 얻으며,
성향적으로 일의 보람을 통해 만족을 더 얻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사랑을 주고받음으로써 만족을 더 얻는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오늘 복음의 마르타와 마리아는 실제로 이 두 유형을 대표하는 사람이거나
마르타의 경우 성향은 그렇지 않지만 집안일 할 사람도 있어야 하기에
마리아와 달리 주님께서 오셨을 때 손님맞이를 위해 바빴을 것입니다.
그러니 성향이 그래서 그런 거라면 마르타의 분주함을 나무랄 것이 못되고,
그런 성향이 아닌데도 그런 거라면 더더욱 나무라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마르타가 크게 잘못인 듯 나무라십니다.
어찌하여 주님께서는 나무라시는 것입니까?
자기의 일에 성실한 것이고, 희생을 한 것인데도 나무라시는 겁니까?
마르타의 행위가 질투라도 되기 때문인가요?
아니면 언니답지 않게 투정을 부리기라도 한 것이기 때문일까요?
사실, 마르타가 주님께 마리아의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면
주님도 어쩌면 아무 소리 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마리아가 좋은 몫을 택한 것처럼
마르타도 좋은 몫을 택했다고 하셨을 겁니다.
다만 그 좋은 몫을 사랑으로 했다면 말입니다.
그러나 주님 보시기에 마르타는 그 몫을 사랑으로 수행한 것이 아니라
하기 싫은 일, 또는 누군가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으로 수행하였거나,
살아가는데 필요한 만큼의 일이 아니라 너무나 많은 일을 하였습니다.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라는 표현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일은 염려하고 걱정하면서 하는 것이 아니어야 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사랑으로 기꺼이 한다면 일을 하면서 무슨 염려와 걱정을 하겠습니까?
염려와 걱정은 자기 일을 할 때 하는 것이고,
자기 계획이나 뜻대로 하려고 할 때 하는 것이며,
무엇보다도 자기 힘으로 그것을 다 하려고 할 때 하는 것이기에
하느님의 일을 하느님 뜻대로 하고
자기 힘이 아니라 하느님을 힘입어 하면 염려와 걱정은 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라는 주님의 말씀은
루카복음이 아무리 기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복음이라 할지라도
일은 필요 없다는 뜻이 아니라
“필요한 것은 사랑뿐”이라는 뜻으로 알아들어야 할 것이며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는 주님의 말씀도
마리아의 몫만 좋다는 뜻으로 알아듣거나
마르타의 몫은 나쁘다는 뜻으로 알아들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일을 일로서 하지 않고 사랑으로 하는 오늘,
그것도 하느님의 일을 사랑으로 하는 오늘이 되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