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인 잔치에 초대받은 이들이 잔치에 오려고 하지 않자, 임금은 종들에게 이야기 합니다. '고을 어귀로 가서 아무나 만나는 대로 잔치에 불러오너라.' 그래서 종들은 거리에서 만나는 모든 이들을 데리고 오고, 그렇게 잔칫방은 가득 차게 됩니다.
오늘의 비유는 하늘나라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렇기에 잔치를 베푼 임금은 하느님이시고, 혼인 잔치에로의 초대는 하늘나라 잔치에로의 초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임금이 소수의 사람만 초대합니다. 이 말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선택된 이들에게만 허락되는 것처럼 이해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거부를 통해서, 하늘나라 잔치에로의 초대가 다른 모든 이들에게, 조건 없이, 악하던 선하던, 모든 이들에게 확장됩니다. 선택된 이들만 초대되는 것, 그리고 그들의 거부를 통해 그 초대가 확장되는 것, 그것은, 가장 먼저 복음을 접한 이스라엘 백성이 선택된 민족으로서 먼저 초대되었다가, 그들의 거부로 다른 민족들에게 복음이 전달되고, 그렇게 다른 민족들에게도 하늘나라에로의 초대가 확장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게 이스라엘 백성이 아닌 우리도, 하늘나라 잔치에 초대를 받아서 가게 됩니다. 그 초대는, 오늘 복음이 이야기 하는 것처럼, 우리의 조건에 상관없이, 우리가 악하던 선하던, 모든 이들에게 전달됩니다. 수도원에서 살면서 자주 생각하게 되는 것 중의 하나가, '수도원에서 살면서 어떻게 저렇게 행동할 수 있어?'라는 생각입니다. 물론 제 모습 안에도 있겠지만, 다른 형제들의 이기적인 모습, 전례에 성실하지 않는 모습을 볼 떄, 그러한 모습은 수도자적인 모습이 아니고, 그렇게 수도원에서 사는 것은 마땅하지 않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생각하는 것이, 나는 그래도 저 형제보다는 좀 낫다는 생각입니다.
한편으로는, 자주 변하는 것이 인간의 마음이기에, 제 마음 안에도 악한 마음과 선한 마음이 항상 함께 있다는 점입니다. 하느님께서 선한 마음만 허락하셨다면, 악한 마음이 자리할 공간은 허락하지 않으셨다면, 조금 더 행복했을 텐데 라는 마음도 있습니다. 악한 마음으로 인해 저지른 잘못을 볼 떄, 더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악한 마음이 내 안에서 없어지기를 바라는 것처럼, 때로는 공동체 안에서 가시처럼 느껴지는 형제들이 눈에서 사라졌으면 하는 생각도 없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너무 잘 알고 있듯이, 눈에 가시로 느껴지는 그 형제가 없어졌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또 다른, 눈의 가시가 곧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이 공동체를 떠나 다른 공동체로 가면 좀 나아질 것 같은데, 다른 공동체로 가도, 그곳에서도 나를 괴롭히는 형제들이 없지 않습니다.
악한 사람과 선한 사람이 함께 지낸다는 것. 마태오 복음의 이 말씀은 가라지의 비유(마태 13,24-30)를 연상시킵니다. 밭에 밀과 가라지가 함께 자라는 것을 보고, 집주인은 수확 때까지 내버려 둘 것을 이야기 합니다. 그 이유는 가라지를 뽑다가 밀도 뽑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즉 공동체에서 눈의 가시 같은 형제를 공동체에서 제외시킨다면, 또 다른 눈의 가시 같은 형제가 나타날 것이고, 그 형제마저 제외시킨다면, 어느 순간 나는 혼자 있게 될 것이고, 그것은 공동체라고 이야기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몸은 공동체 안에 있지만, 외로운 존재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한편으로는 나 자신도 다른 형제들의 생각 속에서 제외될 수 있습니다. 나 자신도 다른 형제들의 눈에 가시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방법은, 내 마음을 바꾸는 것입니다. 내 안에 있는 악한 마음을 선한 마음으로 바꾸도록 노력하는 것입니다. 밭의 가라지를 밀로 바꿀 수는 없지만, 우리의 악한 마음은 선한 마음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그리고 추수 때까지 집주인이 기다리는 것처럼, 하느님께서도 우리의 마음이 바뀔 수 있도록, 인내심으로 우리를 기다려 주십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복음의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은, 하느님의 그 인내심에도 불구하고, 노력 없이 악한 마음만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의미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에 대해서 마태오 복음은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심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늘나라 잔치에 초대 받았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하늘나라 잔치에 영원히 머물기 위해서, 하느님과 함께 하는 그 행복을 영원히 간직하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 마음의 가라지를 밀로 바꾸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