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하여라, 너희 율법 교사들아!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치워 버리고서 너희 자신들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는 이들도 막아 버렸기 때문이다.”
바오로 사도의 서간을 통틀어보면 두 가지 지식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참되고 순수한 지식과 사이비 지식입니다.
참되고 순수한 지식은
하느님을 아는 지식이요,
하느님의 뜻을 아는 지식이요,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입니다.
사이비 지식은
멸망케 하는 지식이요
교만하게 하는 지식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이런 지식론에 비춰볼 때
오늘 복음에서 율법 교사들이 치워버렸다는 지식의 열쇠란
하느님과 하느님의 뜻을 알게 하는 지식의 열쇠를 말하는 것일 겁니다.
그렇다면 율법 교사들이 어찌하여 하느님을 알게 하는
그 지식의 열쇠를 치워버렸다는 것입니까?
그것은 그들이 사이비 지식을 가지고 있어서
자기들도 하느님을 잘못 알고 있었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하느님을 잘못 알도록 인도를 한 것입니다.
우리말에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말이 있는데
율법 교사들은 율법을 아는 것으로 하느님을 안다고 생각하고,
율법을 모르는 사람은 저주 받을 자라고 무시하곤 하였습니다.
“율법을 모른 저 군중은 저주 받을 자들이다.”(요한 7, 49)
이들의 눈에는 예수님도 율법을 모르거나 무시하는 분이었기에
예수님이 바로 하느님을 아는 참 지식의 열쇠라는 것을 모르고
마침내 하느님을 아는 참 지식의 열쇠를 제거해 버렸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보시기에 이것은 율법을 조금 아는 것으로
율법과 율법의 정신을 다 아는 것으로 착각을 하는 것이고,
율법을 아는 것으로 하느님을 다 안다고 착각을 하는 것입니다.
자신은 다 안다고, 하느님까지 다 안다고 착각케 하는 것이 교만입니다.
이것이 지식과 교만의 상관관계입니다.
사이비 지식은 인간을 교만하게 하고,
교만은 자신이 안다고 착각케 하여 참으로 알아야 할 것을 모르게 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바오로 사도는 지식에 대해 이렇게 얘기합니다.
“지식은 교만하게 하고 사랑은 성장하게 합니다.”(1코 8,1)
여기서의 지식은 하느님을 아는 것을 가로막는 교만의 지식이요
하느님이 아닌 다른 것들, 이 세상 것들에 대한 온갖 지식입니다.
이에 비해 사랑은 인격적인 지식으로서
아는 것을 사랑하게 하고, 사랑하는 것을 알게 함으로써
아는 만큼 사랑하게 하고, 사랑하는 만큼 알게 함으로써
우리의 작은 지식이 성장하여 하느님을 아는 지식에 이르게 합니다.
많이 배울수록 겸손해지고,
신학을 공부할수록 하느님을 옳게 두려워하고
더 나아가 사랑할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비는 오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