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종이 마음속으로 ‘주인이 늦게 오는구나.’하고 생각하며,
하인들과 하녀들을 때리고 또 먹고 마시며 술에 취하기 시작하면”
실천적 무신론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오늘 복음의 불충한 종의 경우이고,
하느님은 계신데 주님은 안 계신 경우입니다.
아니, 정확히 얘기하면 하느님이 나의 주님이 아니신 경우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오늘 불충한 집사에게는 주인이 안 계십니다.
집사도 주인에게는 종일뿐인데 집에 주인이 안 계시자
그 집은 자기 집이 되고, 주인 대신 자기가 주인노릇을 합니다.
주인의식과 주인행세는 구별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주인의식을 가져야 하고,
주인의식을 가지고 주님의 집안을 위해 봉사해야 합니다.
그렇긴 하지만 그것이 주인행세를 하는 것이어서는 안 됩니다.
내가 집사가 아니고 주인이 되는 순간 우리 집에는
우리의 주인이신 하느님은 안 계시게 되는 것이고,
무엇을 할 때 하느님 뜻대로가 아니라 내 좋을 대로 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실천적인 무신론입니다.
이 실천적 무신론은 하느님 존재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하느님이 계시지만 계시건 안 계시건 상관이 없습니다.
하느님이 계셔도 내 삶의 자리에는 안 계시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아프리카에 계신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다만 내가 있는 이곳에는 하느님은 안 계시는 것이고,
계신다고 해도 안 계신 듯이 살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각기 주님 집안의 집사입니다.
본당 신부는 본당에서 주님의 집사이고,
저는 저의 수도원에서 주님의 집사이며,
회사 사장은 회사에서 주님의 집사이고,
부모는 각 가정에서 주님의 집사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진정 주님의 집사라면
내가 살고 있는 집이 나의 집인지, 진정 주님의 집인지,
같이 살고 있는 가족들이 주님의 자녀인지, 내 소유인지,
같이 활동하는 사람이 주님 뜻대로 하길 원하는지 내 뜻대로 하길 원하는지,
내 뜻대로 아니 할 때 주님 뜻대로 하는 거라 생각지 않고 화내지는 않는지,
잘 식별하고, 깊이 성찰하는 집사의 오늘이 되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