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내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제는 저의 본명축일이자 백 종순 안젤로 수사님의 기일이었습니다.
관구 회의 중이라 많은 형제들이 저의 축일을 축하해주었는데
그 중의 한 형제도 축하를 해주며
제 축일 무렵에 사랑하는 형제들의 기일이 있다고 얘기하는 거였습니다.
돌아가신 선배 형제 중 제가 사랑하는 한 분은 제 축일에 돌아가셨고,
다른 한 분은 전전날 돌아가셔서 제 축일에 장례를 치렀는데
이에 대해 아는 형제가 그 사랑의 인연을 얘기하는 거였습니다.
아무튼 그 얘기를 듣고 있던 다른 형제가
그러면 자기도 제 축일 언저리에 죽어야겠네 하고 재치 있는 농담을 하였고
그래서 저와 둘러있던 형제들 모두 기분 좋게 웃었습니다.
점심으로 2차 관구회의를 끝내고 대부분의 형제들이 돌아간 뒤
인사회의 때까지 시간이 좀 남아 있어 저는 강가를 뛰었습니다.
그런데 뛰면서 아침에 오갔던 얘기가 떠올랐고 흐르는 물을 보면서
형제들도 떠나가고 물도 흘러가는구나 하는 상념에 빠져들었습니다.
그리고 또 이어지는 생각은 이런 거였습니다.
그렇구나! 물은 흘러가고, 형제들은 떠나가는구나!
그렇습니다. 다 가는 것이고 그래서 내 옆에 없기는 마찬가진데
물은 그저 흘러가고, 형제들은 떠나갑니다.
물은 나와 상관없이 흘러가고, 형제들은 나를 떠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비인격성과 인격성의 차이입니다.
흘러가는 물을 보고 있으면 우리는 붙잡고 있던 것들 놓게 됩니다.
무정한 물을 보며 우리도 무심해지기 때문이고,
붙잡을 필요 없는 것을 공연히 붙잡고 있음을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흘러가는 물은 나를 비우게 하고, 나를 가난하게 합니다.
그러나 형제들은 떠나면서 슬픔을 남기고 허무를 남깁니다.
흘러간 것이 아니라 머물다 떠난 것이기 때문입니다.
흘러간 것이 아니라 한참, 또는 한생을 머물다 떠나간 형제들은
내 안에 머물면서 나를 할퀴고 그래서 생채기를 남기기도 했지만
나를 보듬어주고 힘을 주기도 하였기에 추억도 남기었습니다.
형제들은 떠나면서 미운 정 고운 정, 슬픔과 그리움을 남기고,
그래서 생채기와 추억 안에서 정으로, 사랑으로 남아 있습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사라짐과 사라지지 않음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이 세상의 온갖 일들은 이 세상과 함께 사라지고 말지만
당신의 말씀은 사라지지 않고 당신과 함께 영원히 남을 거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사는 동안 무수한 일들,
너무도 대단하여 몸살을 앓게 하고 몸부림치게 했던 일들,
그래서 어제 얘기대로 한다면 난리법석을 떨게 했던 일들,
이런 일들이 그때는 나를 그리 힘들고 고통스럽게 했지만
막상 지나고 나면 연기가 사라지듯
연못에 돌을 던지면 조금만 파문을 남기고 이내 사라지듯
그렇게 사라지고 아무 것도 남지 않을 것들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은 사라지지 않을 거라고,
다시 말해서 영원히 남을 거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주님의 말씀은 왜 영원히 남게 됩니까?
우리와 영원히 함께 있고자 하시는 주님 사랑의 의지 때문입니까,
아니면 주님의 말씀을 영원히 간직하려는 우리의 사랑 때문입니까?
영원과 사랑은 하느님의 본질이고,
그래서 주님의 말씀도 영원하며 사랑입니다.
그리고 영원히 함께 있고자 하심은 무엇보다도 주님의 의지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주님 사랑의 말씀이 영원히 머물
우리의 사랑만 있으면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