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마침내 그리스도께서 갓난이로 태어나신 성탄이 왔습니다.
우리는 이 성탄을 서로 축하하고 같이 기뻐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축하와 기쁨이 형식적인 축하와 거짓 기쁨이 되지 않으려면
우리는 여기서 왜 우리가 성탄을 축하하고 기뻐해야 하는지 물어야 합니다.
왜 우리는 서로 축하하는 것이고, 왜 우리는 같이 기뻐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부활의 기쁨과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부활이 나와 상관없이 예수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것에 불과하다면
내가 기뻐해야 할 이유가 하나도 없고 내 안에서 되살아나셔야만 기쁨이듯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이 지금, 여기의 나와 우리에게 태어난 것이 아니고
그 옛날 예루살렘에서 태어나신 것에 불과하다면 기뻐해야 할 이유도 없고
서로 축하해야 할 이유는 더더욱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철저히 나를 위해 태어나신 것입니다.
나를 위해 태어나신 것이 아니라면 내게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나에게 태어나야 내게 성탄이라는 말은
성탄 날은 꼭 오늘, 12월 25일이 아니라 내게 태어나시는 날이고,
나만의 성탄의 때가 따로 있다는 뜻입니다.
그렇다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만을 위해서 태어나시는 것이 아니고,
나만을 위해서 태어나셔야 한다고 고집해서도 안 되지요.
그래서 오늘 복음도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계시다고 합니다.
이것이 주님의 성탄의 개별성과 보편성입니다.
주님은 나를 위해서 태어나셔야 하고
그렇지만 모두를 위해서도 태어나셔야 합니다.
이 성탄에 나와 나의 가족은 탄생한 주님으로 기쁘고 서로 축하하는데
이 성탄의 축하와 기쁨에서 배제된 이가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이번 성탄절에 세월호 유가족에게 어떻게 인사해야 할지 모르겠고,
지금 다시 70 m 높이의 굴뚝에 올라간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에게
어떻게 인사를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이들에게 성탄을 축하한다고도, 같이 기뻐하자고도 못하면서
어떻게 제가 저만 성탄을 기뻐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어제는 어떤 분으로부터 “이 세상에서 가장 기쁘고,
가장 행복한 성탄이 되세요.”라는 성탄 축하를 받았음에도
저는 성탄을 마음껏 기뻐할 수도 즐거워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하느님은 사랑이신데 어떻게 사랑 없이 주님을 기쁘게 맞이하고,
하느님에 대한 사랑은 말할 것도 없고, 이웃에 대한 사랑이 없이
어떻게 사랑으로 오시는 주님을 맞이하며 기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이런 제가 겨우 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의 고통을 같이 나누는 시늉을 하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들이 70 m 높이의 굴뚝에 올랐을 때 영하 10도를 넘어서는 추위에다
칼바람까지 부는데 저는 따듯한 방에서 편하게 지내는 것이
너무 마음이 불편해 제 방에 불을 끄는 것으로 면피를 하였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정말 이들에게 성탄을 축하한다고 할 수 없는 건가요?
제 생각에 성탄을 축하한다고 하는 것은 못할지 몰라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들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당신들을 사랑하기에 하느님이신 분이 인간이 되어 오신 거라고,
당신들을 사랑하기에 당신처럼 칼바람에 외양간에서 태어났다고,
저는 여러분을 사랑치 않는지, 사랑치 못하는지 모르지만
우리의 주님만은 여러분을 정말로 사랑하신다고 얘기할 수 있고,
얘기해야 합니다.
단 우리도 그들을 사랑하는 시늉이라도 하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성탄의 사랑에 대해서 더 깊이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성탄의 사랑은 하느님께서 우리의 고통에 함께 하시는 사랑이며,
우리와 함께 계시기 위해 신성을 포기하기까지 사랑하셨을 뿐 아니라
당신의 낮추심과 가난으로 우리를 신성에로 높이시는 사랑이라는 점입니다.
우리의 비천함에 함께 하시는 것도 크신 사랑이지만
우리의 비천함과 함께 계시는 것으로 그친다면
그 사랑은 나를 비천함에서 구하는 사랑은 아니지요.
말하자면 동반자살과 비슷한 것이고 구원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성탄의 사랑은 우리에게 구원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기도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하느님, 저희를 하느님의 모습으로 오묘히 창조하시고
더욱 오묘히 구원하셨으니,
사람이 되신 성자의 신성에 저희도 참여하게 하소서.”
성탄의 사랑은 구원의 사랑인데 창조 때의 그 하느님의 모습으로
우리의 모습을 되돌리는 구원의 사랑이라는 말씀입니다.
주님의 성탄은 하느님과 우리의 시소 놀이처럼
하느님께서 이 세상에 내려오심으로 우리는 하늘로 오르고
하느님께서 인간이 되심으로 우리는 신화하는 놀라운 교환의 축제입니다.
이 놀라운 교환의 축제일에
우리는 우리를 고귀하게 하는 하느님의 사랑에 감사드리며
우리뿐 아니라 다른 모든 이들도 이 고귀함에 참여할 수 있도록
우리가 그들에게 하느님의 사랑이 되어주어야 함을 마음에 새겨야겠습니다.
"우리의 축하와 기쁨이 형식적인 축하와 거짓 기쁨이 되지 않으려면
우리는 여기서 왜 우리가 성탄을 축하하고 기뻐해야 하는지 물어야 합니다.
왜 우리는 서로 축하하는 것이고, 왜 우리는 같이 기뻐하는 것입니까"
그래서 어둠속에 빛으로 오신
아기 예수님께 이렇게 기도합니다.
어디에도 기댈 곳이 없는 이들에게
기댈 수 있는 든든한 벽이 되기 위해
저의 몸과 마음을 튼튼하게 해주소서. 아멘
메리 크리스마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