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자녀 여러분, 지금이 마지막 때입니다.
우리는 지금이 마지막 때임을 압니다.”
오늘 요한의 편지는 지금이 마지막 때라고 하고,
우리는 마지막 때임을 안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누구입니까?
전체를 통해서 볼 때 그리스도의 적과는 다른 사람들이고,
거룩하신 분으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사람들이며,
마지막 때와 진리를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바로 이런 사람들에 속합니까?
우선 지금이 마지막 때임을 알고 있습니까?
우리는 오늘이 2014년의 마지막 날이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우리 중에는 오늘이 한 해의 마지막 날이라는 것도 모르고
정신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예, 제가 지금 <정신없이 살아가는>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우리 중에는 오늘이 한 해의 마지막 날이라는 것을 모를 정도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정신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이 마지막 때인 것을 모르는 사람은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정신없이 사는 것은 좋게 볼 수도 있습니다.
무엇엔가 아주 열중을 하다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때를 알지 못하고 정신없이 사는 것은 문제가 있지요.
울어야 할 때 웃고, 웃어야 할 때 울면 정말 정신이 나간 거겠지요.
우리는 지금이 어떤 때인지 알아야 하고
특히 지금이 마지막 때임을 알아야 합니다.
사실 지금은 늘 마지막이고 늘 처음입니다.
지금은 지금까지의 마지막이고 지금부터의 처음입니다.
우리는 시간을 나타내는 두 가지 그리스말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물리적인 시간인 크로노스와 의미적인 시간인 카이로스 말입니다.
물리적으로 오늘은 2014년의 마지막 날이지만
의미적으로 여느 날과 특별히 다를 것 없는 그런 날일 수 있습니다.
특히 나이를 먹어갈수록 그 날이 그날일 수 있지요.
그러나 젊었을 때는 한 해가 가고 새 해가 오면 마음이 설레곤 했지요.
새 해에는 뭔가 좋은 것이 올 거라 기대를 하기도 했고,
뭔가 새로운 좋은 것이 주어질 거라고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새 해에는 새로운 삶을 내가 스스로 살겠다고 다짐하기도 했지요.
그래서 젊었을 때는 12월 31일이 물리적으로 마지막 날이면서
동시에 지금까지의 삶이 끝장나고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아니 지금까지의 삶을 내가 끝장내고 새 삶을 내가 시작하는,
그런 의미가 있는 시간이 되었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적으로 살아온 삶은 끝장내고
기름부음을 받은 하느님의 자녀로서의 새 삶을 시작하는 날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시간적으로 삶을 잘 산다는 것은 젊었을 때처럼
의미가 발생하는 삶을 사는 것이요, 때를 잘 사는 것입니다.
특히 회개의 때를 잘 알고, 새로운 시작의 때를 잘 알고 사는 것입니다.
지금이 지금까지의 잘못을 고칠 수 있는 마지막 때임을 알고,
지금이 말씀이 계셨던 그 <한 처음>을 시작할 때임을 알며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이 마지막 때임을 압니다.”는 말씀을 묵상하며
오늘이 한 해의 마지막 날이라는 것은 잘 알지만
지금이 마지막 때라는 것은 모르고 살아가고 있지는 않는지 돌아보는
오늘, 한 해의 끝 날입니다.
삶이 일회성이기에 연습이 없는 것처럼
매 순간 순간이 마지막일 수 있기에 은총은 다른 것이 은총이 아니라
기회가 은총이라는 말을 하는가 봅니다.
"지금이 지금까지의 잘못을 고칠 수 있는 마지막 때임을 알고,
지금이 말씀이 계셨던 그 <한 처음>을 시작할 때임을 알며 사는 것입니다."라는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이 순간이 허락된 것에 감사를 드립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