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오늘 주님의 세례를 통해서 우리가 받은 세례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겨 볼 수 있습니다. 물로 세례를 받은 예수님께 성령께서 내려오시고, 하늘에서 '사랑하는 아들, 마음에 드는 아들'이라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이렇듯 우리도 세례를 받으면서, 성령을 우리 안에 모시게 되고, 하느님의 사랑하는 자녀, 하느님 마음에 드는 자녀가 됩니다.
우리 안에 성령, 즉 하느님께서 함께 살아가십니다. 내 안에서 하느님께서 활동하고 계십니다. 감실 앞을 지나갈 때마다 감실을 향해 인사를 하는 것은, 감실 안에 계시는 주님께 인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감실 안에 주님께서 계시는 것처럼, 우리 안에도 하느님께서 계십니다. 감실이 성당 안에서 중요한 곳인 것처럼, 우리도 주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소중한 존재들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사실을 자주 잊고 살아갑니다. 우리 자신은 소중하게 다루어져야 하는 존재들인데, 너무 함부로 다루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육체적인 즐거움을 위해서 술이나 담배를 사용하지만, 그것들의 지나친 사용은 즐거움보다는 육체적인 괴로움, 더 나아가 해로움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때로는 스스로 삶을 마감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주위에서 종종 보곤 합니다.
하느님께서 그 안에 계시기에, 그 건물을 거룩한 집, 성당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하느님께서 그 안에 계시는 우리 역시, 거룩한 존재들입니다. 그렇기에 나 스스로를 사랑해야 하고, 나 스스로를 아름답게 가꾸어 가야 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존재들이고, 하느님 마음에 드는 존재들이기 때문에, 나도 스스로를 사랑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나 스스로를 사랑하는 길이고, 어떻게 하는 것이 스스로를 아름답게 가꾸어 가는 길일까요?
그것은 나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내가 똑똑하기 때문에 하느님의 자녀가 된 것이 아니고, 내가 잘생겼기 때문에 하느님의 자녀가 된 것이 아닙니다. 나는 나이기 때문에, 나는 하느님께서 만드신 피조물이기 때문에,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그 말은, 하느님의 자녀가 됨에 있어서 아무런 조건도 필요 없다는 뜻입니다. 단지 조건이 있다면, 하느님의 자녀로 살아가겠다는 마음이 필요한 것이고, 우리는 그것을 세례를 통해서 드러냅니다.
하느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은, 나의 장점만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나의 단점도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나의 장점만 사랑하신다면, 그것은 나의 반쪽만 사랑하시는 것이지, 나의 전부를 사랑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듯 우리도 우리 자신을 사랑한다고 이야기 할 때, 우리의 단점도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즉, 단점을, 없애야 할 것, 버려야 할 것, 보고 싶지 않은 것으로 생각하기 보다는, 나의 한 모습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물론 단점을 보는 것, 그것도 내 모습이라고 인정하는 것, 쉽지 않습니다. 때로는 고통스럽고, 때로는 괴롭습니다. 그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우리는 종종 술의 힘을 빌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술이 고통을 해결해 주지 못한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괜찮습니다. 단점이 많아도 괜찮고, 약점이 많아도 괜찮습니다. 실수가 많아도 괜찮고, 넘어져도 괜찮습니다. 그것이 우리 인간의 모습이고, 그 모습마저도 하느님께서는 사랑의 눈길로 바라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다른 사람도 사랑할 수 있고, 더 나아가 하느님도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나의 단점을 받아들일 수 있을 때, 다른 사람의 단점도 이해할 수 있고, 비난 보다는 사랑으로 감싸 줄 수 있게 됩니다.
그렇다면, 하느님의 자녀로 살아가겠다는 결심은, 우리가 받은 세례의 의미는, 나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더 나아가 나 자신의 약함을 인정하겠다는 결심을 뜻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