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다시피 우리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있다.
거기에서 사람의 아들은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넘겨질 것이다.”
각오와 기대.
죽을 각오와 성취 기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주님과 제자들의 대비되는 마음가짐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과 제자들은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죽을 각오로 올라가시고 죽게 될 거라 예고하시는데
제자들은 거기서 권력을 쥐게 될 거라는 기대에 부풀어
1인자와 2인자가 누가 될지 미리 김칫국을 마시고 있습니다.
그래서 당신이 마실 잔을 같이 마실 각오가 되어 있냐고 물으시니
주저함이 없이 마실 각오가 되어 있다고 대답을 합니다.
주님은 고난의 잔을 각오하라고 말씀하신 것인데
제자들은 축배의 잔을 기대하고 대답한 것이지요.
주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똑같이 말씀하십니다.
당신과 함께 고난의 잔을 같이 마실 각오를 하라고.
우리가 괜히 헛다리짚거나 헛물을 켜지 말아야 한다고.
각오와 미래는 모두 미래를 대비하는 우리의 마음가짐입니다.
그런데 우리 삶의 경험은 어떻습니까?
좋은 것이 있을 거라, 주어질 거라 기대하면 그대로 됩디까?
기대대로 된 적이 몇 %나 됩니까?
그리고 기대한 대로 되지 않았을 때 어땠습니까?
기대대로 되지 않은 것이 아쉬운 정도였습니까?
너무 실망하여 좌절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할 정도였습니까?
조금 기대했으면 아쉬운 정도였을 것이고,
최고를 기대하고 전부를 걸었으면 더 살아갈 힘을 잃었을 것입니다.
마치 로또에 1등 당첨을 기대하고 가진 것을 다 털어 걸었는데
1등은커녕 10등 안에도 들지 못했을 때와 같을 것입니다.
반대로 우리가 악, 그것도 최악을 각오하면 어떻게 됩니까?
우선 미래에 대한 근심걱정이나 불안과 두려움이 없고,
다음으로 각오한대로 최악이 상황이 실제로 닥쳐도 담담하며,
최악을 각오했는데 최악이 아닐 경우 다행으로 여길 것이고,
그런 일이 전혀 일어나지 않을 경우 은총 체험을 할 것입니다.
우리가 은총을 살고, 행복을 사는 비결이 여기 있습니다.
선을 기대하지 않고 악을 각오하고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우리가 살아야 할 가난입니다.
우리의 가난은 선의 가난이요,
선을 기대하는 그 기대의 가난입니다.
반대로 악을 각오하고
최악의 상황에서 하느님과 은총을 체험하는 가난입니다.
상대에게 기대했다 기대가 무너지는 것은 전적으로 제 문제라는 생각을 하는 편입니다.
왜냐면 상대를 정확히 볼 눈이 부족한 제 자신의 어리석음이기에....
차라리 근거 없는 기대를 접고 제 자신의 힘을 키우는 것이 최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될때가 많습니다.
스스로의 힘을 키우는 것만이......
상대를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 살아가면서 제 자신을 비롯해서 인간이 참으로 한계지어진
존재라는 걸 절감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인간관계가 실타래 꼬이듯이 꼬여 마음이 생지옥으로 어찌 할 수 없을 때....
그래, 죽기 밖에 더 하겠어....죽고 사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결심을 하고 나면 다시 새하늘 새땅이 열리고 또 한 고비를 넘기는....,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라는 말씀을 떠올리며 말입니다.
"우리가 은총을 살고, 행복을 사는 비결이 여기 있습니다.
선을 기대하지 않고 악을 각오하고 사는 것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