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사도행전에서 유다 지도자들은 사도들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당신들은 무슨 힘으로, 누구의 이름으로 그런 일을 하였소?”
이에 성령으로 가득 찬 베드로가 대표로 나서서 이렇게 대답합니다.
“나자렛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 박았지만
하느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서 다시 일으키신 바로 그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여러분 앞에 온전한 몸으로 서게 되었습니다.”
지금 이렇게 말하는 베드로를 비롯한 사도들은 아주 당당하지만
그러나 앞서 봤듯이 베드로와 사도들은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아주 겁쟁이였고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닫아걸고 있었으며
문 밖으로 나가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던 이들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사도들은 어떻게 사람들 앞에 나설 수 있게 되었고,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까?
한 마디로 얘기하면 성령을 받아 충만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도 이렇게 얘기하지 않습니까?
“그때에 베드로가 성령으로 가득 차 그들에게 말하였다.”
그렇다면 이제 다시 질문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 성령은 어떻게 받게 된 것입니까?
그것은 오늘 복음과 같은 체험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풀어 말하면 상실 체험, 허사 체험을 했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에 의하면 제자들은 실패 체험의 연속입니다.
따르던 예수를 잃은 것이 제일 큰 상실 체험입니다.
그리고 자연히 야망도, 희망도, 꿈도 잃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정치적 고장 예루살렘에서 고향 갈릴래아로, 옛날로 돌아갑니다.
이때의 제자들은 자포자기 상태였는데 그 심정이 다음 말에 나타납니다.
“나는 고기나 잡으러 가겠소.”
그런데 설상가상이라고 하듯이 또 다시 실패를 하게 됩니다.
고기잡이마저 실패로 돌아가고 밤새 한 일이 허사로 돌아갑니다.
인간이 지닌 힘은 두 가지입니다.
능력能力과 노력努力입니다
능력은 어느 정도 타고난 힘이고, 노력은 성실함의 힘입니다.
제자들, 특히 베드로는 고기잡이의 능력을 갖춘 사람이고,
밤새도록 고기를 잡았으니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한 것입니다.
그런데 능력을 다하고 노력을 다했는데도 실패로 돌아가는데
능력과 노력, 다시 말해서 인간의 모든 힘이 허사가 되는
바로 그 때가 은혜의 때이고, 성령께서 임하시며,
성령으로 인하여 우리가 주님의 힘을 지니게 되는 때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결코 자기의 힘으로 무엇을 하지 않고,
무엇을 하든 주님의 힘으로 합니다.
무위지위無爲之爲, 허허실실虛虛實實입니다.
우리 신앙의 말로 바꾸면 내가 하지 않음으로써 하느님께서 하시게 하고,
나를 비우면 바울수록 성령으로 가득 차고,
나의 힘을 빼면 뺄수록 영적인 힘이 충만하시게 하는 것입니다.
사실 인간의 힘은 하느님을 힘입지 않으면 폭력적이고 파괴적일 뿐입니다.
베드로 사도가 신랄하게 지적하듯 유다 지도자들이 한 짓이라고는
생명이신 주님, 생명을 주시는 주님, 우리를 위해 생명을 바치신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밖아 돌아가시게 한 것밖에 없고 이젠 사도들을 죽이려고,
누구의 힘으로, 누구의 이름으로 살리는 일을 하느냐고 추궁합니다.
이 세상 자기들의 권력에 도전하는 힘이 어떤 힘이냐고 으름장 놓는 것이고,
자기들의 힘 외에는 그 어떤 힘도 인정치 않겠다는 것이며,
자기들의 힘을 균열시키는 영적인 힘은 제거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그들에게 베드로는 “너희들에게 버림받았지만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신”
“그분 말고는 다른 누구에게도 구원이 없다.”고 잘라 말합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 우리도 우리의 어깨에 힘을 빼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