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주님께서는 비슷한 내용의 말을 조금 다르게 표현하십니다.
“내 계명을 받아 지키는 이야말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21절)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23절)
주님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이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이고,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주님의 계명을 지킬 것이기에
우리는 이 두 말씀의 차이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에 그 차이가 큰 차이는 아닐지 모르지만
분명 차이가 있고, 그 차이가 유의미합니다.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라는 말씀은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나 주님을 미워하는 사람과 비교되는 말이며,
이때 우리는 오직 주님과 나의 관계만 있습니다.
이에 비해 주님의 계명을 받아 지키는 사람이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말씀은 주님과 우리 사이에
둘의 관계만이 아니라 다른 관계도 있음을 내포하는 것 같습니다.
곧 우리에게는 주님의 계명 말고 다른 계명도 있고,
그래서 주님의 계명이 아닌 다른 계명을 선택할 수도 있는데
그럼에도 다른 계명을 선택치 않고 주님의 계명을 선택한다는 뜻이 있지요.
진정 우리에게는 세상의 법이 있고,
법까지는 아닐지라도 세상의 논리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합니다.
이런 우리인데 우리는 어떻게 살아갑니까?
주님의 계명을 따라 살아갑니까, 세상의 법이나 논리를 따라 살아갑니까?
아니, 주님의 계명을 따라 살지도 세상의 논리를 따라 살지도 않고
나는 오직 나의 신념에 따라 사는 사람입니까?
주님을 믿고 주님을 사랑한다고 하는 우리 공동체,
특히 우리 수도 공동체는 어떻게 살아갑니까?
우리 공동체는 진정 주님의 말씀, 복음 말씀을 따라 삽니까?
아니면 모두 독불장군이어서 자기주장대로 살거나
인간적인 친소 관계에 따라 친한 사람의 말을 따라 삽니까?
길을 찾을 때 나는 혼자 찾습니까, 공동체와 같이 찾습니까?
공동체가 같이 길을 찾더라도 그 길을 어디에서 찾습니까?
복음에서 찾습니까? 아니면 인문학이나 사회학에서 찾습니까?
우리 공동체에 어떤 문제가 있을 때 어디서 답을 찾습니까?
서로 머리를 맞대고 진지하게 연구 토론하며 답을 찾거나
외부 전문가 집단의 자문을 받아 찾습니까?
아니면 그리스도교 공동체답게 복음에서 그 답을 찾습니까?
우리 중에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고,
주님을 사랑하냐고 물으면 모두 다 사랑한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우리에게 주님의 말씀을 그러면 잘 지키느냐고
누가 물어도 우리는 마찬가지로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을까요?
그런 사람, 그런 공동체가 얼마나 될까요?
오늘 말씀은 이에 대한 주님의 가르치심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주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 분명하지만
주님의 계명을 지킬 때 주님을 사랑한다는 우리말에 진정성이 있으며,
계명을 지키는 그만큼 주님을 사랑하는 것임을 일깨우시는 오늘 말씀입니다.
인간은 정신만이 아니라 육체를 가졌고 정신은 육체를 통해 반드시 표현되어
전달 될 때만이 보이지 않는 마음을 알아 볼 수 있는 것이 아닌가....인간의 수준에서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육체를 지니시고 세상에 오신 것도 그러한 까닭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굳이 육체를 지니시고 오시지도 않았을 것이고 당신이 하느님의 아드님임을
믿게 하는데 그렇게 힘들지도 않았을 것이고 죽음으로까지 몰리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흔히 말하는 이심전심이라는 것도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육체의 표현을 통해 서로의 마음이
충분히 전달된 이후에 가능한 것이라고......저는 생각합니다.
그런 수고스러운 자기 표현을 게을리 했으면서, 상대에게 내 맘 알지, 했다가
상대가 뭔 맘...?하는, 급 기대가 무참히 무너지는 피드백을 받는 경우는 허다하니까요.....
계명을 지킨다 함은 믿는 마음, 사랑하는 마음이 육체적인 수고로움으로까지 이어질 때
온전한 믿음, 온전한 사랑이 된다는 차원에서 진정성을 이야기 하지 않나 싶습니다.
"계명을 지키는 그만큼 주님을 사랑하는 것임을" 기억하며 살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