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요한복음의 빵의 기적을 보면 재미있습니다.
다른 복음에 비해 다양한 인물이 등장합니다.
주인공이신 주님과 조연자인 필립보, 안드레아, 그리고 소년입니다.
이에 대해 우리는 이런 질문을 하게 되지요?
그냥 빵을 만들어주시면 되지
왜 굳이 몇 개의 빵이 필요하고
왜 기적을 하는데 여러 사람이 등장해야 하는가요?
빵이 없으면 기적을 행할 수 없으시고,
사람들, 조력자가 없으면 기적을 행할 수 없으신가요?
그럴 리가 없으시고, 아무 것 없이 기적을 행할 수 있으시며,
누구의 도움 없이도 기적을 행할 수 있으시지요.
그렇지만 이런 말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도움 없이 뭣이든 하실 수 있으시지만
인간의 협력 없이 아무 것도 하지 않으신다는 말말입니다.
왜 인간의 협력 없이 아무 것도 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사랑이 아니겠습니까?
당신 구원의 협력자로 우리를 쓰시는 사랑 말입니다.
이로써 우리는 주님 구원의 대상이기도 하면서
주님과 함께 구원사업을 하는 동업자, 동역자가 되는 겁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은 주님의 구원사업에는 아주 작은 것도
결코 작지 않고 소중함을 얘기합니다.
주님께서는 어린 아이가 가진 다섯 개의 빵과
두 마리의 물고기로 기적을 행하십니다.
왜 어른이 가진 더 많은 빵과 물고기로 기적을 행하지 않으셨을까요?
추측이지만 아마 어른은 가진 것을 내놓지 않았기 때문에,
다시 말해서 아이만 내놓았기 때문에 그러셨을 겁니다.
그것은 어른이 아이보다 욕심이 더 많아 내놓지 않는 것일 수도 있지만
어른이 아이보다 단순성과 믿음이 부족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습니다.
어른은 더 많은 것을 가지고 있었으면서도 이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조금 가진 것을 가지고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것으로는 이 많은 사람에게 아무 소용이 없을 거야!
이에 비해 어린 아이는 그런 계산을 하지 않고,
그저 그러니까 단순하게 가진 것이 있음을 내놓습니다.
그런데 그 작고 적은 것이 하느님께는 결코 작지도 적지도 않습니다.
수천 명, 수만 명을 먹이고도 남습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지금 포르치운쿨라 행진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와 행진단은 이런 체험을 거의 매일 하는데
그중에서도 첫날의 첫 식사는 이런 체험의 압권이었습니다.
점심이 되었지만 먹을 것이 없어
그저 정자를 잡고 거기에 둘러 앉아 쉬고 있는데
저희들의 떠드는 소리에 할머니가 울타리 너머로 내다보시는 겁니다.
다들 구걸의 경험이 없으시고,
제가 책임자이기에 책임감으로 할머니께 먹을 것을 달라고 하니
할머니는 줄 것이 없다고 일언지하에 거절하시는 것이었습니다.
할머니께서는 인색하셔서가 아니라 정말로 당신께 있는 것이
스무 명이 넘는 저희에게 턱없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셨을 겁니다.
그렇지만 행진단의 다른 분들이 가서 조금이라도 좋으니 주십사 청했고,
그래서 할머니께서 주신 된장과 풋고추와 그리고
각자가 가지고 온 것을 가지고 점심상을 차리니 먹고도 남았습니다.
물론 서로를 위해 양보한 결과지만 마음은 풍성했고,
우리는 오병이어의 기적을 체험하였지요.
우리의 나날이 그런 날들이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