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사람의 아들이고, 밭은 세상이다.
좋은 씨는 하느님의 자녀들이고, 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악마다.”
나는 가라지가 아닐까?
아니 가라지를 뿌리는 악마는 아닐까?
선하신 하느님께서 세상을 만드셨는데
왜 세상에 악이 있고, 악한 사람이 있는지.
선신과 악신이 있기에 이렇게 된 것은 아닌지.
이런 문제에 대한 의문은 모든 문화와 종교 안에서 있어왔고
선신과 악신이 있다는 이원론二元論도 있어왔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주님 말씀을 잘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일단 주님의 가르침은 이원론이 아닙니다.
창조주는 하느님 한 분 뿐이시고 다른 창조주는 없으며
하느님이 창조하신 모든 것은 다 선이라는 것이 주님의 가르침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 세상에 악이 들어왔는가?
이에 대해서는 주님께서 구약의 가르침을 따르셨다고 보기에
하느님과 동등하게 대립하는 다른 신이 있거나
그 신에 의해 악이 들어온 것이 아니고
그저 유혹자, 악한 영이 있을 뿐이고
유혹자의 꾐에 넘어가 인간이 죄를 지어 악이 들어왔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창조하셨기에
본래부터 악한 것은 하나도 없고
죄에 의한 악, 곧 죄악만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이 비유에서 주님께서 정작 얘기하고자 하시는 것은
이 문제가 아니라 악한 사람을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느냐 그 문제입니다.
그러니까 인간 안에 어떻게 악이 들어와 악한 사람이 되었느냐 보다
그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입니다.
크게는 사회적으로 너무도 큰 죄를 지은 사람을 사형시킬 것인지,
작게는 우리 공동체 안에 물의를 일으키는 사람을 쫓아낼 것인지,
이런 문제에 대한 얘기인 것이고 이에 대해 주님께서는
우리가 가라지를 뽑으려 들지 말라고 하시고,
그것도 지금 당장 뽑으려 들지 말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밀과 가라지를 잘 가려낼 능력이 없고,
잘 가려낼 수 있다 하더라도 잘 뽑아낼 능력이 없기 때문이며
더 근본적으로는 능력 이전에 그렇게 할 권한이 없기 때문입니다.
실상 누가 밀이고 누가 가라지입니까?
내가 뽑아내야 할 가라지가 아닐까요?
내가 가라지를 뿌리는 악마가 아닐까요?
자칫 우리는 자기 기준으로 자기는 밀이고 나와 다른 사람,
또는 내가 싫어하고 미워하는 사람을 가라지라고 하기 쉽지요.
이런 나이니 내가 가라지를 뽑아내야겠다는 생각은 아예 말아야 합니다.
그러기보다는 내가 가라지가 아닌지,
내가 공동체 안에 가라지를 뿌리는 존재는 아닌지 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인간의 성숙은 자기 객관화가 아닌가 싶습니다.
자기 타자화를 통해 자기 성찰, 더 나아가서 자기 회개까지 할 수 있도록,
자기 중심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자신을 객관적으로바라볼 수 있다면
적어도 제 자신으로 인해 상대가 힘들어 하지 않을 것이고 제 자신으로 인해 벌어지는
사회악은 줄어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똥묻은 개가 겨묻은 개 나무란다는 격이 되지 않도록 제 자신부터 살피는,
"내가 가라지가 아닌지, 내가 공동체 안에 가라지를 뿌리는 존재는 아닌지 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