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사람이 어디서 저런 지혜와 기적의 힘을 얻었을까?
저 사람은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
주님의 고향 사람들은 제가 볼 때 주님의 고향 사람답지 않습니다.
개천에서 용 나온다는 말이 있긴 하지만 주님을 전혀 이해치 못하는
그런 곳에서 어떻게 주님과 같은 분이 나왔는지 놀라울 뿐입니다.
그러기에 입장을 바꿔 주님의 고향 사람들이 자기들의 고장에서
주님 같이 대단한 분이 나온 것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의 고향 사람이나 저나 시골구석에서 그리고 목수집안에서
대단한 영적 지도자가 나온다는 것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고,
신적인 존재가 나온다는 것은 더더욱 이해키 어렵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께서 보이신 지혜나 기적의 힘은 인간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그러기에 그것들이 어디서 나왔는지도 자명합니다.
그것은 하늘에서부터 온 것이고
하늘에서부터 온 것이기에 얻은 것이기보다는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일까요?
200주년 성서는 “저 사람이 어디서 저런 지혜와 기적의 힘을 얻었을까?”를 “어디서 이 사람한테 이런 지혜와 기적들이 내려올까?”로 번역합니다.
그러므로 신적인 지혜와 기적의 힘은 하늘로부터 얻어야 하고
얻는 것이기보다는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어제는 조별로 행진을 하면서 쉬었다가 다시 출발할 때에
제자들이 악령을 쫓아내지 못하자 왜 자기들은 주님처럼
악령들을 쫓아내지 못하는지 묻는 복음의 대목을 읽었습니다.
기도하지 않고서는 악령을 쫓아낼 수 없다고 주님께서 답하시는데
주님과 제자들의 차이가 여기에 있고
주님과 우리의 차이도 여기 있습니다.
이렇게 얘기하면 대뜸 우리도 기도한다고 대답을 하겠지만
많은 경우 우리는 받는 기도를 하지 않고 얻으려는 노력을 합니다.
제 생각에 얻으려고 애쓰는 것은 기도가 아닙니다,
기도는 애쓰는 것, 달리 말하면 고달픈 수고나 노동이 아니고,
매우 편하고 수동적인 것, 달리 말하면 주시는 것을 받는 것입니다,
어린아이에게 엄마는 밥을 먹여줍니다.
어린아이는 떠주는 밥을 아 하고 받아먹기만 하면 됩니다.
지혜와 기적의 힘은 애써 얻는 것이 아니라
자녀답게 아버지 하느님에게서 받는 겁니다.
주님의 고향사람들은 육신의 부모를 아버지라고 했고
주님은 하느님 아버지를 “아빠, 아버지”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고향사람들과 주님의 결정적인 차이이고
이것이 우리와 주님의 차이임을 묵상하는 오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