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로데는 예수님께서 하신 모든 일을 듣고 당황하였다.”
헤로데는 예수께서 하신 일에 대해 듣고 당황합니다.
당황한다는 것은 뜻밖의 일을 갑자기 당할 때 어리둥절해 하고
뜻밖의 일을 갑자기 당하기에 그래서 보통 어찌 할 바를 몰라 하는 거지요.
그런데 뜻밖의 일이라고 하여 모든 일에 당황하는 것은 아닐 겁니다.
예를 들어 뜻밖의 좋은 일, 그러니까 바라던 일이 갑자기 이루어지면
그때는 당황하지 않고 오히려 너무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하겠지요.
그렇습니다. 두 경우 다 어찌 할 바를 모르게 되는 것은 같지만
원치 않은 일이 갑자기 닥치면 난처해서 어찌 할 바를 모르게 되고
원하는 일이 갑자기 닥치면 너무 좋아서 어쩔 줄 모르게 되는 게 다릅니다.
그러니 우리가 어떤 일을 당해도 당황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당황한다는 것은 준비가 안 되어 있어서 어쩔 줄 모르는 것이기에
당황치 않으려면 원치 않은 안 좋은 일에 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당황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떤 일을 당해도 담담한 것인데
최악의 경우도 각오를 하고 있으면 어떤 경우에도 담담할 것입니다.
각오란 마음의 준비이기 때문입니다.
당황하지 않기 위한 또 다른 대처는 냉정해지는 것입니다.
각오가 마음의 준비라고 한다면
냉정이란 요동치는 감정을 누르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인데
원치 않은 일이 갑자기 생길 때는 이성이 앞서도록
우리의 감정이 준동치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당황하여 어찌 할 바를 모르는 것은 보통
일시적인 이성의 마비에서 오는 것이잖아요?
그러니까 가장 안 좋은 일에 대한 각오도 되어 있고
어떤 경우에도 냉정할 수도 있다면,
어떤 안 좋은 일에도 당황하지 않을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예방인 각오와 사후약방인 냉정이 둘 다 있으면 좋겠지만
저의 경우 각오는 잘 되어 있지 않고
그래서 보통 냉정함으로 안 좋은 일에 대처하려고 하는 편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끝기도 때 매일 이런 기도를 합니다.
“이 밤을 편히 쉬게 하시고 거룩한 죽음을 맞게 하소서.”
그런데 죽음을 준비하는 기도를 매일 하지만
기꺼이 죽음을 맞이할 마음의 준비는 안 되어 있는 겁니다.
또, 갑자기 중풍이 올 수도 있다고 마음 준비를 하려고 하지만
참으로 그것을 기꺼이 맞이할 각오가 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어떤 안 좋은 일이 닥쳐도 냉정할 수 있다면 그것도 좋지만
어떤 안 좋은 일도 받아들일 각오가 되어 있다면
그것이 더 좋음을 묵상하는 오늘입니다.
담담하게 오늘을 살 각오를 합니다.
간호사선생님이 주사를 들고 \"환자분 좀 아픔니다\".라고 말하면 전 어느 정도 아픈거냐고 집요하게 묻습니다.
왜냐면, 그 아픈강도 만큼 마음의 준비롤 해야하기 때문에.....
그래도 준비는 어디까지나 준비일 뿐이지 고통이 줄어드는 건 아니지만 본능적인 감정이 요동치는 것을 이성과 의지를 총 동원해서 잡을 수 있는 만큼 잡아아한다는 각오...그것 밖에 그 상황에서 내가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절박함에서지요..
앞으로 무슨일이 제 앞에 닥칠지 모름니다.다만, 견딜 수 있을 만끔만 주시라고 기도하는 이 순간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