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지 이 어린이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사람이야말로 가장 큰 사람이다.”
오늘 주제는 <큰 사람>과 <작은 사람>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은 세상에서 큰 사람이 되려고 경쟁하는데
주님께서는 하느님 나라에서 큰 사람에 대해서 말씀하시면서
이 세상에서 큰 사람이 되려는 사람은 하느님 나라에서 작은 사람이고,
이 세상에서 작은 사람이 하느님 나라에서 큰 사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와 관련하여 저는 어떤 사람이고 싶어 하는지 성찰을 해보니
다른 모든 사람이 저를 큰 사람이라고 인정하지만
그럴수록 저는 스스로 작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작은 사람으로 살아가는 사람이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이런 저는 참으로 가증스럽고,
주님께서 역겨워하시는 그 위선자이지요.
저를 작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은
저의 영적 이상이고 주님께서 바라시는 천상적 작음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 세상에서 사람들이 저를 큰 사람으로 인정하기를 바란다는 면에서
저는 지극히 세속적이고 이 세상에서의 큰 사람이기를 추구하는 거지요.
이 세상에서는 큰 사람 대접을 받을 만큼 다 받고
그러면서도 영적으로 작은 사람, 하느님 나라에서 큰 사람도 되려는
지독한 이율배반이고 모순인 것입니다.
이런 저에 대해서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크면 저 세상에서는 작고,
이 세상에서 작으면 저 세상에서 크다고 아주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사실 큰 사람이 되고프고 그래서 되려는 사람은 작은 사람이지요.
이미 큰 사람이 왜 큰 사람이 되려고 하겠습니까?
작으니까, 작다고 생각하니까 큰 사람이 되려고 하는 거지요.
진정 큰 사람, 크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큰 사람이 되려하지 않지요.
늘 하던 대로 그리고 오래 전부터 계획한 대로
어제는 한가위 달마중을 같습니다.
저처럼 한가위 보름달을 보러온 분들이 많을 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거의 없어서 그 큰 보름달을 저 혼자 오래 차지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곳은 산꼭대기인지라
보름달이 뜬 하늘과 서울 야경이 한 눈에 들어왔는데
둘 다 아름다워 보이긴 하였지만
보름달이 뜬 하늘에 비해 서울 야경은 초라하고 칙칙하였지요.
하늘을 품은 사람에게 세상은 작다고,
아니, 하늘을 보는 사람에게도 세상은 작다는 묵상을 하였고
하늘을 품은 사람은 세상을 욕심내지 않을 거라는 묵상을 했습니다.
그러므로 욕심을 품은 사람은 이미 큰 사람이 아니고
사랑을 품은 사람 또는 사랑하는 사람이 큰 사람이고,
하늘을 품은 사람 또는 하늘을 사랑하는 사람이 큰 사람입니다.
어린이가 그런 존재이고,
어린이 같은 사람이 그런 사람입니다.
<뭐가 될래? 하면 대통령이요.>이라고 대답하는 어린이 말고,
가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순수한 어린이 말입니다.
어느 영적서적을 읽던 중,
"...........영적으로 읽지 않았으나 '영적독서'라고 할만한 독서도 어지간이 많이 했다.
여기 저기 메모도 하고 논쟁하기에 도움이 될 성싶은 구절은 모두 외워가면서
영적 서적을 탐독했다.
결국 나 자신을 과시하고 이 진리들을 내 것으로 가장하여 그 빛으로 나자신을
빛나게 하기 위해서였다."라는 구절은 마치 저 한테 하는 말처럼 들려 가슴이 찔리는
느낌을 받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순수한 마음이 아니라면 모든 것은 허무한 영광일 뿐....
많이 배웠다고 순수한 것도 아니고 못 배웠다고 순수하지 않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 ......순수한 사람 앞에 서 있을 때 제 자신도 순수해지고 행복해 진다는 거...
그 순수함이 하늘을 품은 사람의 모습이 아닐까......
모든 것은 다 잃어도 죽을 때까지 곱게 간진하고 가야할 것이 순수함이고 의도적이지 않는,
천성적으로 타고난......하늘이 내려 주신 선물이 아닐까....라는 묵상을 해보는 이순간입니다.
고맙습니다.